[데스크 칼럼] 통화스와프와 대통령의 복심
[데스크 칼럼] 통화스와프와 대통령의 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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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을 만났다. 한미간 통화스와프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 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별도의 구체적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물은 외환 시장 안정화를 위한 양국간 협력 의지 정도를 확인한 원론적 수준이다.

경제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통화당국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옐런 재무장관을 만난 후 발표한 결과물은 '필요시 양국간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그쳤다.

이 총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때 양국간 외환 시장 안정화 방안을 고려하기로 한만큼 추 부총리와 옐런 장관 사이에 통화스와프 관련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추 부총리에게 공을 넘기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기재부 역시 "통화스와프는 양국의 중앙은행이 논의해야 할 일인 만큼, 재무 당국 차원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며 구체적 결과를 이뤄내지 못한데 대해 마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의 원칙적 역할을 따지기에는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는 절실함에 가깝다.

한국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4382억달러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적정 외환보유고로 권고하는 9300억달러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그나마 이마저도 대부분 채권이다. 현금 비중은 고작 5%에 불과하다.

'달러가 동나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던지면 된다'는 식의 과거의 논리도, 신흥국들이 적용받는 역외 레포 기구(FIMA)를 통한 달러 조달 한도 증액 수준에서 수용하는 것도 적절한 해법이 아니다.

중국 견제 목적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 가입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에게, 한국은 상설 통화스와프도 아닌 한시적 통화스와프조차 요구하기 어려운가?

이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0.5%p 금리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았지만 연준은 이보다도 인상 폭이 큰 자이언트스텝(0.75%p)을 이미 밟아 왔다. 금리 역전을 우려한 외국인의 자본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더 빠질 것도 없는 것으로 치부한 채 막연히 안심하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최근 행보는 박수받을만 하다. 이 원장은 증권사들에게 단기유동성 점검 등 리스크 대응력을 강화하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특히 주가연계증권(ELS) 자체 헤지 등 마진콜 요구에 대비한 외화유동성 관리에 대해서는 증권가 수장들을 불러 단호하리만큼 강하게 주문했다.

지금처럼 달러 강세와 더불어 글로벌 증시가 약세를 보일 때 ELS 마진콜 요구가 들어오면 외화유동성 부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겪어 본 일이다. 채권이 일시에 시장에 내던져지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반면 달러 수요가 몰리며 환율은 수직 상승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유로스톡스50 등 해외 지수 연계 파생상품으로 인한 달러 유동성 위기는 불과 2년 4개월 전인 2020년 3월에 발생했었다. 당시 금융당국 인사들이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수시로 소집됐다는 후문도 많았다. 흑자도산, 금융사 유동성 위기 전이, 외환 위기 등 듣기만 해도 섬뜻한 표현이 오르내리던 일촉즉발의 당시 상황을 잊어서는 안된다.

2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는 코로나로 인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었고 지금은 전세계 금리 인상, 공급망 불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 정세의 불안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다른게 있다면, 재작년 3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에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을 수조원 인상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하다가 극적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를 용인해 줬다는 점이다. 전 정부가 뭘 특별히 잘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기가 어색하다.

현재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는데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하자마자 첫 방문한 곳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었고, 현대차를 비롯해 재계는 줄줄이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옐런 재무 장관 역시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을 만나 한미간 배터리 동맹을 강화하자는 요청을 했고, 이에 LG화학은 북미 지역내 양극재 공장 신설 등 14조원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옐런 재무 장관은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바이든 정부로서는 달러 약세 유발 및 이로 인해 자국 국민들의 수입 물가 상승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어쩌면 끔찍하게 느껴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한국은 절박하다. 미국 재무 수장이 방한하기 불과 며칠 전이 돼서야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 당정이 합의하고 말고할 여유는 없어보인다.

윤 대통령은 검사 후배 이 원장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의 목소리도 시간을 내서 경청해 보았으면 한다. 그가 왜 금융당국 수장이 되자마자 ELS 마진콜을 그토록 경계하는지.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원장이 ELS 마진콜을 경계하며 정작 표현하고 싶은 단어는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가 아닐까. 

기업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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