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변동금리 올리고 고정금리만 인하···'당정 압박 VS 실리' 눈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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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은행 이자장사에 잇단 경고 메시지
시중금리 고공행진···수익성 악화 불가피
부담 덜한 고정금리 인하, 이자낮추기 '시늉'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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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고정(혼합)금리를 낮추는 대신 변동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당정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당정의 경고성 메시지에 시중금리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대출금리를 인하해야 했던 은행들이 떨어지는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4대 은행의 이날 기준 주담대 혼합금리(5년고정+6개월변동)는 연 4.68~6.452%로, 1주일 새 최고금리가 7% 초반대에서 6% 중반대로 크게 떨어졌다. 지난 21일 기준 4대 은행의 주담대 혼합금리는 연 4.75~7.22%로 그동안 금리 상단은 0.768%p(포인트), 하단은 0.07%p 하락했다. 혼합형이 아닌 5년주기 변동형 상품을 취급하는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금리가 연 4.70~6.20%에서 연 4.56~6.06%로 하락했다.

주요 은행의 주담대 혼합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금리산정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의 금리가 하락한 영향도 있지만 당국 경고 이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대출금리를 하향조정했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들 중 유일하게 주담대 최고금리가 연 7%를 넘어섰던 우리은행은 최근 우대금리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서 전체 대출금리를 낮추기도 했다.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변동·혼합금리 변동추이 (자료=각 사)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변동·혼합금리 변동추이 (자료=각 사)

이런 가운데 같은 기간 주요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6개월 코픽스)는 오히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3.63~5.853%로 지난 21일(연 3.63~5.742%)과 비교해 상단이 0.111%p 올랐다.

특히, 금리가 동일한 우리·농협은행을 제외하고 국민은행은 연 3.69~5.19%에서 연 3.70~5.20%로, 신한은행은 연 4.36~5.66%에서 연 4.47~5.77%로, 하나은행은 연 4.424~5.724에서 연 4.553~5.853%로 모두 올랐다. 또 다음달 1일부터 주택 관련 대출에 적용되는 우대금리를 확대하기로 했던 농협은행도 주담대는 '혼합형'에만 우대조건을 부여할 계획이다. 다만, 국민은행의 경우 내부 산정기준에 따라 매월 말 대출만기와 금리변동주기(6개월)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동으로 금리가 1bp(1bp=0.01%p) 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매월 말 금리가 1bp씩 오르거나 낮아질 수 있다는 게 국민은행 측 설명이다.

은행들이 고정금리를 낮추는 대신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77.3%(4월 기준·한국은행 집계)의 비중을 차지하는 변동금리는 오히려 높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출금리 인하 시늉만 낸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를 두고 은행권은 글로벌 긴축 등으로 금리산정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가 오르고 있고, 전세대출 등 서민·실수요 대상 대출금리를 크게 인하한 탓에 대출금리를 낮출 여력이 많지 않다고 해명한다. 실제 최근 혼합금리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는 지난 2012년 4월 이후 10년2개월 만에 4%대를 넘어섰다. 변동금리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도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대출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은행들이 금리를 산출할 때 시장상황을 명확하게 반영하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서민·실수요자 비중이 높은 전세대출 금리를 최근 크게 인하한 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적금금리를 올리게 되면서 수익성 악화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같은 자구책은 미봉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정이 예대금리차 공시 등을 통해 은행의 이자장사에 제동을 걸겠단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은행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안그래도 조달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맞춰서 금리 인상·인하폭과 조정방식을 충분히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하는데, 연일 당국과 정치권의 '타깃'이 되고 있어 앞다퉈 금리를 내리다 보니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며 "은행이 수익을 잘 내지 않으면 결국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는데, 그런 부분과 당정 압박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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