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공간 그리고 인플레이션
[전문가 기고] 공간 그리고 인플레이션
  • 지효진 마스턴투자운용 R&S실 글로벌리서치팀장
  • hyojin.ji@mastern.co.kr
  • 승인 2022.05.26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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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효진 마스턴투자운용 R&S실 글로벌리서치팀장

공간은 말 그대로 무언가의 사이에 있는 비어 있는 곳이다. 공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없다. 이러한 공간은 일정한 기준으로 구분되고, 상대적으로 위치가 매겨지며, 그 결과로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하면 여러 이름을 갖게 된다.

땅에 농부가 와서 농사를 지으면 논이나 밭이라는 이름을 받고, 건물을 지으면 집이 되거나 상가, 오피스가 된다. 하지만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해서 공간 각각의 역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오피스라고 규정지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공간이 규정되는가? 오피스의 앞과 옆에는 도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사람들이 잘 다닐 수 있도록 이동 수단들도 잘 연결돼 있어야 할 것이다. 좀 더 크게 보자면 삶을 살아갈 주거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가 한적한 산골짜기에 건물을 높게 올리고 오피스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그 공간을 오피스로 만들어 주는 상대적인 공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공간은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다. '비어 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변하면서 함께 변하는 것이고, 그런 변화가 주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공간의 '절대성'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성'이 변한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공간을 구분짓고 명명하는 것 외에도, 공간의 역할을 가지고 투자 대상물로 만들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동산이라는 투자 대상물은 사람들이 공간을 상대적으로 나눈 것에 대한 결과물임에도, 마치 그것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믿기도 한다. 

거리와 건물 그리고 상대적인 구획들에 사람들은 가치를 매기고, 투자를 하고, 그리고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그 공간을 보유하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사람도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자산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부동산의 가치는 높게 평가돼 왔다. 공간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크게 변해 왔는지 보다는 투자 대상물로서의 수익성만 생각하며 가격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인플레이션이 이슈가 되면서 부동산은 또 다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라든가 혹은 낮은 변동성이 주는 대체투자 자산으로서의 가치와 같은 공간의 본질보다는 부동산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게 공간을 규정하고 있다.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물가도 절대적이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은 시간의 흐름에서 얼마나 가치가 올랐냐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어제 혹은 작년보다 5%, 10%가 올랐다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인플레이션이 절대 가치로서 무언가를 나타낼 수는 없다. 

물건의 가치를 말할 때도 100원, 1000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매겨진 가격이 비싸거나 싸다고 하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플레이션은 시간에 대한 변화이자 어제와 내일을 잇는 오늘 그 변화가 얼마나 있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공간이 비어 있는 양자 사이에서 구분 지음에 따라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인플레이션 혹은 물가는 어제와 내일이라는 시간 사이에 오늘 얼마나 변했는지에 따라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규칙들, 사람들과 관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등 그 자체보다는 주변의 다른 것들 혹은 옆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 

포스트 팬데믹 그리고 근무형태 등 패러다임의 변화로 우리의 집과 일터 등 공간은 그전보다 다양한 역할이 부가되며 가치가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부동산이 인플레이션을 헤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익률과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공간이 다른 것들의 움직임에 상대적으로 더 연계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 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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