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일본 경제의 딜레마
[홍승희 칼럼] 일본 경제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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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반면교사 삼지 않으면 머잖은 훗날 한국에서 반복되어 나타날 위험이 있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20~30년 전에 일본을 성장의 롤모델로 여겼던 경험을 현재까지도 이어나가고 있는 장·노년세대들의 사회적 영향이 큰 상황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때 엔화가치를 의도적으로 하락시키며 수출에서 상당한 이익을 누렸던 일본이지만 최근의 급격한 엔화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안좋은 엔화 하락'이라는 표현을 쓰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현재의 엔화가치 하락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데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현재 일본의 산업생산력이 예전과 달리 상당히 약화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엔화가치 하락으로 인해 그동안 국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엔화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독자는 일본의 상장기업 실적은 여전히 좋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근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기에 상장기업들의 실적이 좋다는 통계의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또 하나 이번 엔화가치 하락은 원자재 거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일본의 교역 여건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수입가격은 폭등하는 데 수출가격은 낮춤으로써 수출의 실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 원자재가격 폭등이 예전 같으면 반년, 길어야 1년 정도면 가라앉겠지만 현재의 국제정세로 볼 때 이를 과거와 같이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장기간의 팬데믹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이상이 생긴 상황이나 당장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곡물 등의 가격폭등이 상황 종료되는 즉시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곡물은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올해 생산차질이 불가피하겠고 따라서 그 여파는 최소한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뿐만 아니라 분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식량 무기화를 시도하거나 교역 대상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이미 인도네시아, 호주 등의 사례에서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

에너지는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와의 거래 자체는 전후 쉽사리 풀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문제는 중동지역 국가들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고 OPEC의 주도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미국을 못미더워하며 다른 행보를 보이고도 있다. 국제 에너지 생산, 유통 질서의 변화도 가능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원자재 시장의 어려운 형편보다 더 현재 일본의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당면 문제는 막대한 정부 부채와 이를 전적으로 떠안고 있는 일본은행, 그리고 초저금리 상태다. 저금리 정책은 일시적인 산업활성화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지만 이것이 장기화되고 동시에 막대한 정부의 양적확대가 병행되어온 일본의 경우 물가가 폭등하든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든 그에 대응한 통화긴축 정책을 쓸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정부 부채가 300%를 바라보는 일본에서 그 부채의 거의 대부분을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일본은행이 떠안고 있는 매우 기형적인 일본 경제의 구조가 초래한 결과다. 더 이상 안전자산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엔화는 일본에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게 만들고 있지만 이를 방어할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는 기간 중 전기, 철도 등을 민영화하면서 사회적 인프라의 건설, 개선 등에 소요되는 부담을 정부도, 관련 기업도 서로 회피해왔다. 그 결과 여기저기서 시설노후화로 인한 사고들이 빈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민영화했으니 모르쇠로 일관하고 기업들은 이를 감당할 비용이 없다고 배 째라는 식이어서 해결 전망이 안 보인다.

한동안 한국 언론들을 통해 일본 아베노믹스는 대단히 높이 평가됐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도쿄에서 만났던 일본 지식인들은 그 성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을 모두 취업률에 포함시킨 결과여서 실질적 국민소득은 늘지 않은 단순 눈속임일 뿐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당시까지만 해도 물가가 너무 안 올라 걱정이라는 일본 정부나 언론의 말 역시 정부 부채를 대폭 늘리며 돈을 풀어 간신히 디플레이션을 방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경제개발 초기에 일본은 분명 우리가 본받을 점이 많았지만 이제 앞서가던 일본은 빠른 성장의 늪에 빠져 한때의 성과를 30년째 서서히 까먹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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