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 수행하고 떠나는 '가계부채 저승사자' 고승범
임무 수행하고 떠나는 '가계부채 저승사자' 고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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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2년 이상 남아...尹정부 출범 앞두고 사의 표명
8개월간 '가계빚 잡기' 올인···대출중단 등 부작용도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용퇴의 뜻을 밝힌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지난 8개월은 '가계부채 잡기'로 요약된다. 시한부 자리로 여겨졌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금융위원장직에 고 위원장이 등판한 후 가계빚 증가세는 둔화됐고, 부동산경기도 빠르게 식었다.

한국경제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를 안정화시키면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국내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았다. '가계부채 파이터'를 자처했던 고 위원장을 두고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고 위원장은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위원장의 임기는 3년으로, 지난해 8월 취임한 고 위원장의 임기도 2년 이상 남았지만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정권 교체기에 기관장들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 

지난 8개월간 고 위원장은 강도 높은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코로나19 이전 4%대를 유지하던 가계부채 증가세가 취임 당시 7%대를 넘어서는 등 부채 리스크가 나날이 커지고 있던 터라 고 위원장으로선 칼(규제)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위원장은 가계대출 시행 시기를 앞당기고, 고강도의 총량 관리에 돌입하는 등 특단의 비상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규제 과정에서 대출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과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은행들이 대출총량 규제에 맞추기 위해 대출을 중단하면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정책금융상품과 제2금융권 대출이 연쇄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고 위원장은 무리한 가계대출 규제였다는 세간의 비판에도 규제 강화 기조를 이어나갔다. 이같은 소신 행보는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과도한 부채와 금융불균형 확대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됐던 사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경험이 바탕이 됐다.

실제 고 위원장의 대출규제 아래에서 가계부채 증가세는 안정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59조원으로 지난해 12월부터 3월 말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4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도 올해 들어 매달 감소하는 추세다. 은행을 포함한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도 올해 들어서부터 매달 감소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줄면서 업계는 고 위원장의 규제 효과가 본격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어느 정도 안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를 통해 대출규제 완화 의지를 다시 한번 내비치면서 부동산시장이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대선 이전까지 전국 주택가격 상승폭이 크게 떨어지는 등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대출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부동산 매매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고 위원장은 가계대출 규제를 두고 "인기 없고 쉬운 길이 아닌 것을 알지만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며 누차 밝혀왔다. 가계부채·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관련 전문가들과 다수 간담회를 갖고, 전문 서적을 가리지 않고 읽는 등 밤낮으로 시장 안정화를 위한 공부에 매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용퇴를 결심한 것도 가계부채·부동산시장 안정화란 임무를 어느 정도 달성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LTV 완화, DSR 미래소득 반영 등 윤석열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기조는 '가계부채 저승사자'로 대표되는 고 위원장의 행보와도 맞지 않다.

고 위원장의 뒤를 이어 금융위를 이끌어갈 새로운 수장의 어깨도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규제 완화로 대출수요가 폭주할 가능성도 크다. 금리가 치솟고 있는 만큼 부채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고 위원장이 대출규제와 더불어 시행하고자 했던 금융산업 발전 부문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현재 고 위원장의 후임으로는 김주현(행정고시 25회) 여신금융협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 회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사무처장 등 핵심 부처를 맡아온 경제관료다. 거시·미시경제 부문을 두루 경험해 금융정책을 이끌어가기에 무리 없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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