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글로벌 인플레이션 위기의 파장
[홍승희 칼럼] 글로벌 인플레이션 위기의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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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위기가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고 이런 국내적 위기가 이웃 국가 간 전쟁으로 치닫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해도 3차 대전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한 국제사회가 러시아를 비난하고 제재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이상을 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했지만 장기간의 팬데믹에 이은 양국간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커지면서 점차 확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미국의 대 중국 견제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이 전 세계 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흔들더니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을 흡수하겠다는 공격의지를 밝히며 차츰 과거 냉전시대의 진영간 갈등체제로 진행돼가고 있다. 그에 따른 중국의 자원무기화 공격까지 더해져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제대로 지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전쟁판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러시아의 오판에서 출발한 잘못된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의 다방면에 걸친 각종 협력이 한국에 큰 메리트를 주었기에 전쟁 발발 후 대 러시아 제재에 한국이 동참한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인 듯한 반응도 보였다.

물론 전쟁에서 러시아가 당초 예상과 달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냉전시기부터의 오랜 우방국인 중국마저 등돌리는 모양새가 나오는 등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몇 개국을 제외하면 완전히 고립된 그림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쉽사리 종전을 하기도 여러 분위기상 힘들어 보인다.

현재 분쟁 중이기는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 모두 러시아의 약화를 바라고 있어서 서둘러 종전을 한다 해도 러시아에 이미 내려진 각종 제재들이 쉽사리 풀리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언론 통제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적 고립에 따른 살인적 물가폭등과 상품 부족 등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소득 없이 전쟁을 마무리할 경우 푸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 진퇴양난에 빠지는 모습이다.

이미 막대한 최신 무기들을 공여하기 시작한 미국·영국·프랑스 입장에서는 국방안보 차원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패전을 용납할 수 없게 됐다. 경제적 상황만 보면 전쟁을 서둘러 끝내도록 중재해야 할텐데 현재 돌아가는 형국은 러시아가 항복선언을 한 대도 계속 더 싸워보라며 말리고 나서는 모양새다.

일단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상당부분 막히게 된데다 러시아 서남부 평원이나 우크라이나는 모두 세계적인 곡창지대인데 저렇게 정신없이 싸워대니 올해 농사는 끝났고 또 종전을 하더라도 워낙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커서 회복에 한세월 걸리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현재 물가상승률 4.1%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인 한국조차 수출실적 호조를 무색하게 만드는 수입물가 상승률에 치여 1·4분기 무역수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55% 물가상승을 보인 아르헨티나 같은 특수한 경우까지는 아니지만 미국 8.7%, 영국 7% 등 전 세계가 근래 보기 드문 물가상승률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파장이 이미 일부 저개발국가에서는 정치적 혼란을 불러오고 있고 선진 강대국 사이에서는 서로 네 탓을 하며 분쟁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에서는 정권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미국의 한 싱크탱크에서는 현재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키는 배경에 중국이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자국내 물가를 잠재우기 위해 비료·철강·돼지고기 등을 대량 수입하는 것을 넘어 사재기함으로써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민을 위한 수입에 딴지를 걸 명분은 그 누구에게도 없겠지만 문제는 이미 중국이 자원무기화의 전력이 있다 보니 비판의 표적이 되는 듯하다.

현재의 경제적 위험성은 가난한 나라일수록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강대국들 입장에서 이런 위기상황은 여러 방면으로 기회가 된다. 미국은 이 기회에 무기 재고를 털어내고 새로운 무기시스템을 도입할 기회이기도 하고 미국산 에너지자원이나 곡물 등으로 생색낼 찬스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숨죽였던 독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일본 역시 이를 기화로 평화헌법 개정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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