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머쓱해진 '금융규제 샌드박스'
[기자수첩] 머쓱해진 '금융규제 샌드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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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쪽 공무원들은 별나라 공무원으로 통합니다. 금융은 지역구가 아닌 나라 경제가 더 중요한 곳이라 결국 국회의원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국민보단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국민에 의한 통제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전문성도 강하고 전통적 금융 속성에 물들어 있다 보니 금융산업을 규제 중심으로 접근하는데, 이에 대해 국회나 국민이 지적한다고 한들 그 목소리가 잘 닿지 않죠."

오랜 기간 중앙부처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현재 디지털자산 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경직된 공직사회'가 새로운 산업 탄생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중에서도 금융 분야는 리스크(위험) 회피형이 주를 이루고 있어 신(新)산업을 '육성'이 아닌 '규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기조가 강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인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최근 금융위원회가 '조각투자 플랫폼'을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를 개최하고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의 상품을 '투자계약증권'으로 규정했다. 뮤직카우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받은 후 저작권료 청구권에 따라 수익을 배분한 점, 음악 저작권을 쪼개 주식처럼 거래하고 음원 가격 상승·하락에 따라 투자자가 수익·손해를 보는 사업구조를 보유한 점 등이 금융투자업에 가깝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 금융자산이 아닌 미술품, 음악 저작권, 한우, 스니커즈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어 차세대 재테크 수단으로 통하던 조각투자는 앞으로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게 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들 플랫폼은 투자자 보호, 정보보안, 장애대응, 광고기준 등의 부문에서 기존 금융투자회사에 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현행 자본시장법은 전통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신기술 기반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가 담겨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각투자는 실물자산에 대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소유권(가상자산)을 나눠 갖는 개념이다. 블록체인, 가상자산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산업으로, 현행 법 체계가 만들어진 후 탄생했다. 업계 종사자들은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현행 자본시장법으로 규제 기준을 적용할 경우 관련 기업들의 줄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번 증선위의 결정으로 금융위가 운영하고 있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2차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현행 규제체계가 신기술·신산업의 진입장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17년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해 혁신기업에 대해 현행 규제를 한시적으로 예외해주고 있다. 금융위도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며 혁신금융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따로 인허가를 받지 않고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뮤직카우와 유사한 수익구조를 보유한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의 경우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포함돼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조각투자를 혁신산업으로 보고 규제샌드박스 대상에 포함시켰던 금융위는 같은 산업에 대해 앞으로 현행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카사의 경우 뮤직카우보다 한층 까다로운 투자자 보호 방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본시장법 규제 아래에 놓이는 것과 규제 예외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현재는 혁신서비스로서 금융위 지원을 받고 있는 카사도 규제샌드박스 지정 기간이 종료되면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신기술·신산업을 기껏 키워놓고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처사다.

투자자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 방안'을 앞세워 신산업 태동 자체를 막는 규제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기존 법이 문제면 투자자 보호와 신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면 된다. 지금 금융위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 대한 금융위의 적극적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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