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이 한국인이라면···안락사, 보험보장 어디까지 왔나
알랭 들롱이 한국인이라면···안락사, 보험보장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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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4년···보험금 지급 요건 有
적극 안락사는 법적 인정 아직···이론상 가능 vs 불가능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 50대 김씨(57)는 최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아직 사회적으로 젊은 나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한다는 '웰다잉(Well-dying)’을 공부하면서, 생명 연장을 위한 무의미한 치료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 기간 고심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이를 가족에게도 알렸다. 

웰빙(Well-bing,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확산되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 결정과 호스피스에 대한 의사를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19세 이상 성인 대상)'를 등록한 건수는 올해 2월 기준 121만건이 넘었다. 제도가 시행된 2018년엔 10만건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할 때 4년 만에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최근 프랑스 국민 배우이자 국내에서도 '세기의 미남'으로 알려진 알랭 들롱이 향후 건강이 악화되면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는 한동안 잠잠하던 '죽음'과 '선택'이라는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막을 수 없고 너무 오래 살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죽음에 '자기 의지' 개념이 더해지고 해당 논쟁도 커가면서, 관련 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리스크를 보장하던 보험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먼저 보험업계는 국내에서 통용되는 안락사의 종류를 나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락사는 생명을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데, 그 중 의사 도움을 받아 약물을 주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환자 혹은 가족 요청에 따라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공급 및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국내에서는 '존엄사'를 소극적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도 갖추고 있다. 반면 스위스에서 허용하고 있는 '조력자살'이나 앞서 언급된 '적극적인 안락사'는 국내에선 불법이다. 조력자살은 적극적인 안락사와 같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타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끝내는 행위'로 정의된다. 세세히 분류하면 알랭 들롱이 선택한 죽음은 조력자살에 속하는 셈이다.

국내 보험사들도 존엄사를 선택한 보험소비자가 사망보험금을 정상적으로 수령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 의지로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중단해도, 이를 자살과 무관하게 보고 보험금 규모·지급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이후 금융감독원도 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 약관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으로 피보험자가 사망하는 경우 연명 의료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은 제3조(보험금의 지급사유) 제1항의 사망의 원인 및 사망보험금 지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험의 경우 사망 종류에 따라 보험금 액수나 지급 여부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인정하고 바라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일반사망은 생명보험의 기본이 되는 사망이며 그외 재해사망, 상해사망, 질병사망 등으로 구분된다.

일반사망에서 원칙적으로 자살은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자살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허용할 경우 자살이나 보험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자살 관련한 보험사 면책기간을 2년으로 두고, 이 기간이 지나 가입자가 자살한 경우에 한해 일반 사망보험금은 지급한다.

반면 '조력자살'과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한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해서 "이론상 가능하다"는 분석과 함께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일단 종신보험에서 일반사망은 질병나 상해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면책기간인 2년이 지나 사망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일반사망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법상 해당 조치들이 불법인 데다 관련 사례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판단기준이 모호해 조심스럽다는 게 보험업계 중론이다. 다만 앞으로 죽음과 자기 선택권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지고 법적 기준도 만들어지면 보험약관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 동의했다.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종신보험 지급 요건을 따져 보니, 적극적 안락사도 이론상으론 일반사망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아직까진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방법이 아니고, 보험금 지급 사례도 없는 상황이라 좀 더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 전에도 연명치료 중단을 자살로 볼 것이냐 혹은 존엄사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는데, 존엄사 인정·제도 도입·근거 조항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보험금 지급도 가능해진 것"이라며 "적극적인 안락사나 조력자살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보험 보장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사회적 논의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며 "소극적 안락사도 공론화 이후 법적으로 요건이 마련되면서 보험금 지급에 대한 논란도 정리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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