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있는 금융상품이 없다
매력있는 금융상품이 없다
  • 홍승희
  • 승인 2003.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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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풀린다고 불평들이 많다. 그러나 시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시장은 거품이 염려될 만큼 많은 돈들이 몰려다닌다. 그런데도 생산적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투자여력이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한 개인의 일생을 놓고 보면 1년 일해 4년은 먹고살아야 한다. 지금처럼 교육기간은 길어지고 조기퇴진 열풍 속에 노동력을 팔 기간은 짧아지고 게다가 평균수명은 늘어만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제 최소한 대학졸업, 더 나아가 대학원 진학이 예전 대학진학만큼이나 보편화돼 가는 상황이다. 게다가 취업 재수, 삼수가 흔하다. 남자들 경우는 군대 2년 복무가 또 돈벌이 할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렇게 취직하고 20년이면 소위 ‘사오정 오륙도’의 틀에 걸려 허우적댄다. 40대 후반 무렵 현역에서 밀려나는 것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 평균수명대로라면 그 다음에도 30년쯤 더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현역시절 부지런히 재테크에 힘을 쏟아야 한다.

사회복지는 아직 매우 낮은 수준이고 노후를 믿고 의탁할 사회적 장치는 미흡하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현재와 미래에 자식들은 더 이상 부모를 봉양할 처지가 못된다. 국민연금도 의료보험도 거의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다. 별도의 저축없이 살아갈 수단이 못된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단지 노후생활의 보조수단일 뿐 그것만으로는 기초생계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돈이 좀 있다고 마음놓고 소비로 돌릴 여력은 없다.

그렇다고 직접금융이든 간접금융이든 투자자들 입맛을 당길 매력적인 상품도 없다. 저금리 시대에 어떤 금융상품을 고르라는 자체가 수용될 여지가 없다. 주식시장도 아직은 투자메리트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외국인 장세라고 표현된다. 외국인 투자동향에 따라 등락을 거듭할 뿐 국내 투자자들이 선뜻 발 들여놓기에는 매력이 매우 낮다. 수익률은 성에 차지 않고 위험부담은 크다. 당연히 들어서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증권시장의 애널리스트들조차 외국인들이 왜 갑자기 매수에 나서고 매도로 돌아서는지 이유를 제대로 분석해 보여주지 않는다. 몇몇 종목만 집중적으로 사고파는 그들의 행태때문인지 그들이 무엇에 사고, 또 왜 그 시점에서 파는지 관심조차 안갖고 있다고 봐야 할 형편이다.

덕분에 투자자들로서는 주가등락의 이유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주식시장은 발 들여놓기 께름직한, 안개 자욱한 강변일 뿐이다.

그나마 부동산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여유자금 조금 가진 이들이면 너나없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드니 수요·공급의 불일치로 거품이 생긴다. 게다가 소규모 사업이라도 할라치면 부동산 담보 없이 은행돈 쓰기도 어려워 여유 있을 때 부지런히 담보될만한 부동산을 사재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이미 일본의 사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부동산대책으로 어떻게든 거품이 커지지 않게 하려 하지만 이미 부동산과 기득권은 강하게 결합돼 있다. 대책이 제대로 나오기도 어렵고 나와봤자 힘을 쓰기도 어렵다. 이대로 뻔히 보이는 파국을 향해 치달아 가야 하는가.

부동산 거품현상을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잡자면 첫째는 금융기관들이 더 이상 부동산 담보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고 둘째는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금융상품들이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안정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춘 금융상품이 없다. 단기간 벌어 오래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주기를 고려한 금융상품을 찾기 어렵다.

금융상품으로는 인플레 헷지가 안된다는 금융기관의 고정관념이 너무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금리 시대라지만 동시에 저성장 시대이기도 하다.

노후대책으로는 역시 금융상품이 신뢰할만하다는 믿음을 갖게 할 책무가 금융기관에 있다. 요즘 PB가 은행가의 핫이슈이지만 아직 젊은 고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들 젊은 고객의 향후 생활주기를 고려한 생활설계에 더 많은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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