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전쟁의 우연과 필연, 그리고 실수
[홍승희 칼럼] 전쟁의 우연과 필연, 그리고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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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력 차이가 어른과 아이의 수준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임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상과 달리 러시아의 지지부진한 진격 속도에 전 세계가 모두 의아해하면서 그 원인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그렇게 나온 여러 분석들 가운데 흥미로운 가설의 하나는 우크라이나 침공시의 전황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물음에 설마 실제로 침공하랴 싶어 군 수뇌부가 듣기 좋은 낙관적 전망을 보고했고 이를 믿은 푸틴이 전격적인 진공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듣기에 다소 황당해 보이고 사실 여부도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보자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6.25 전에 한국에서도 벌어진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실천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북진통일론을 거론하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군에 북진계획을 세워 보고하라는 요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에 속해있던 작전장교 한명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처음 청와대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을 때만 해도 군에서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싶어서 묵살했었다고 한다. 군 장비도, 무기도 제대로 없고 하다못해 군인들 급식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던 당시에 우리가 북진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는 거듭 독촉을 하는 단계에 이르자 눈치 빠르기로 이후에도 정평이 난 당시 작전참모장 정일권 대령(그때 장군은 아니었던 것으로 들은 기억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음)이 이건 대미협상용 블러핑을 위한 계획서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참을 무시한 채 선만 쭉쭉 그어가며 신의주까지의 북진루트를 그려나갔다고 했다.

현실성이 전혀 없이 농담 같은 이 작전계획서가 아마도 6.25 이후 일부에서 제기된 북침론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광복군이나 학도병 등 다양한 출신을 가진 장교 집단 가운데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육사출신과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이 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군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분위기여서 무모한 북진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도 실제로 그에 따랐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6.25 당시의 보고서들을 보면 무능력한 장군들이 수두룩했고 그들이 이후 이승만에 대한 맹목적 충성파로 군을 좌지우지했지만 일본군 출신으로 2차 대전 당시 병참이 무너진 일본군의 패배과정을 경험한 만큼 섣불리 북진에 나서는 것에는 반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남한 쪽 사정이 그러하니 북한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오판, 전쟁에 대비할 생각은 안했을지라도.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들의 강력한 수호의지다. 구 소련 기갑병력의 70% 가량이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는 보고도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기 급급했던 우크라이나가 국방력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러시아를 향해 그토록 강력한 저항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이는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런데 전쟁에서 가장 큰 변수는 사기라고 한다. 6.25 참전 장교로부터 들은 얘기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해 올라가는 중에 수백 명의 북한군 포로를 단지 두명의 한국군 부상병이 끌고 남하하는 광경을 봤다고 한다.

단순한 힘의 차이로만 보자면 수백 명의 북한군이 왜 단 두 명의 병사, 그것도 부상병 둘을 못 이겨 끌려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하면서 북한군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그에 비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전황이 뒤집힌 국군은 사기가 펄펄 살아났기에 가능한 광경이었다는 거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세계사는 1차 대전은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피격돼 시작됐고 2차 대전에서 미국이 참전한 것은 미국 상선이 독일군에 피격 당해 침몰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가르쳤다. 전쟁이 그런 단순한 동기로 시작될 리는 없고 이미 짙어진 전운에 작은 불씨가 떨어진 것일 테지만 문제는 작은 불티 하나로 큰 산불이 나기도 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저 구긴 체면을 세우려 핵 카드까지 주무르는 푸틴이지만 작은 불티 하나만 잘못 날려도 전 세계가 전화에 휩싸일 가능성은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영향력 있는 '입'들 간수 좀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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