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공약점검②] '표심 잡기' 보험공약 남발···비전·로드맵 결여
[20대 대선 공약점검②] '표심 잡기' 보험공약 남발···비전·로드맵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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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 확대 '한 뜻'···비전 제시는 '글쎄'
"밑그림 제시보다 핀셋공약 위주···구상안 필요"
건보재정 악화에 대한 해결책 등 대안제시 부족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지난 4일 오전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지난 4일 오전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대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이 앞다퉈 '생활 밀착형' 보험 공약을 발표한 가운데, 표심을 노린 '핀셋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와 반려동물·군인보험 등 미니 정책을 골자로 만들어진 후보들의 공약에 보험제도 발전을 위한 '밑그림'이 실종됐다는 이유에서다.

정책 대상이 좁게 설정되면서 '사각지대'를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은 보험산업뿐 아니라 국민 삶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전·로드맵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구체적인 논의가 없는 공약은 '실천 가능성'에 물음표만 남기기 때문이다.

◇ 李 '탈모·임플란트' vs 尹 '당뇨병·희귀암' vs 沈 '심상정 케어'
 
건강보험 공약의 공통분모는 '비급여를 줄이는 것'과 특정 유권자층을 겨냥한 '핀셋 공약'이다. 건강보험 비급여 영역에 속한 탈모·당뇨병 등을 급여 항목으로 옮겨 건강보험 지원 폭을 늘리는, 이른바 '비급여의 급여화' 공약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30세대에게 호소력이 짙은 생활 밀착형 미니 공약들도 쏟아졌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올린 ‘이재명의 합니다-소확행 공약 46'에서 "탈모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탈모 치료제의 건보 적용 공약을 공식화하는 동시에 중증 탈모의 모발이식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탈모와 함께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확대, 난임치료 약제비·아동청소년 중증 아토피 치료제 급여화, 현역병 상해보험 확대 등도 소확행 공약에 포함됐다. 

윤석열 후보도 같은달 '석열씨의 심쿵약속' 열두 번째 공약으로 임신성 당뇨와 성인 당뇨병 환자에게 연속혈당 측정기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임신·출산 전 성인 여성 건강검진 지원을 확대하고, 모든 난임 부부에 대한 치료비도 지원한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건보지원 확대 공약에는 중증질환·희귀암도 포함됐다.

심상정 후보는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심상정 케어'를 앞세웠다. 어떤 질병, 어떤 치료에도 국민 1인당 1년 병원비 부담이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한도 내에서 탈모·비만·코골이·안경 등을 모두 건보로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2020년 기준 65.3%에 머물러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그외 반려동물 공공 건강보험 도입 등도 약속했다.

◇ 목표율·재정문제·실손보험 연계 '미흡'···'무늬만 공약' 지적

이처럼 생활 밀착형으로 분류된 공약들이 잇따르자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비급여의 급여화 필요성, 재정 건전성, 실손보험 등 민영보험과의 연계 방향 등 공약 구상안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큰 비전 아래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공약들이 제시되지 않으면, 무늬만 정책인 공약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건강보험 보장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왜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이 없다. 이전 대선만 하더라도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비전과 목표 보장률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들이 제시됐다. 지금 방안 대로라면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제시한 공약들이 다 시행되더라도 건강보험 보장률이 70%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보험업계와 의료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예상 지원액, 필수 의료 여부, 위중도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도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건강보험 내에서 비급여 항목이었던 치료가 급여로 전환될 때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요소들이다. 논의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급여 지출, 보험료 부과 체계 등이 제대로 확립돼야 정책 실효성도 높아진다. 

건보의 재정 건전성이 중요한 논점 중 하나라는 얘기다. 실제 건강보험은 2020년 기준 3531억원 적자를 냈다. 2018년(1778억원 적자)과 2019년(2조8243억원 적자)에 이어 3년 연속 적자 기록이다.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역시 2020년 기준 17조4181억원을 기록하며 매년 줄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모든 후보자들이 건강보험의 비급여를 축소해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공약을 제시했지만, 큰 틀에서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비전과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며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는 인상만 남겼다. 비전과 방법론이 없다 보니 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은 실손보험 등 민영보험, 의료비 부과 시스템과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한다. 검사, 주사, 수술, 처방 같은 모든 의료 행위에 국가가 가격을 정하면 의료기관들은 진료 후 해당 비용을 건강보험공단에서 청구하는 식이다. 행위가 많아질수록 의료기관이 돈을 버는 구조라, 민간병원이 90% 이상인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과잉진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실손보험이 보험업계 폭탄이 된 배경 중 하나다.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가 꼽히는데, 일부 병원에서 수익 확보를 목적으로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진료를 늘리거나 과잉치료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보 급여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발생하는 행태가 나타났는데,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재정에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따지는 동시에 비급여를 통제하고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퇴출할 수 있는 정책이 같이 제시돼야 한다"며 "꼭 필요한 의료행위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내 급여화하고 과잉 의료행위를 잘 통제할 수 있다면, 급여화로 인한 건보 재정 악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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