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퇴직연금 시장서 반격 통할까···'ETF 매매'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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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시장 '300조원' 눈앞···KB국민·농협銀 등 출시 준비
6월 시행 '디폴트옵션' 변수···수익률 좇는 '머니무브' 전망
(사진=서울파이낸스 DB)
(사진=서울파이낸스 DB)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300조원에 이르는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은행권의 전략이 사뭇 달라졌다. 묻어두는 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퇴직연금을 수익률 높은 상품으로 굴리려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앞다퉈 상장지수펀드(ETF) 매매 서비스 출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르면 올 상반기 주요 은행들 모두 퇴직연금 ETF 시장에 뛰어들 전망이나, 이 전략이 시장에 통할지는 미지수다. 실시간 매매가 어렵다는 핸디캡이 여전한 데다 오는 6월부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시행되면 높은 수익률을 좇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은 올 상반기 퇴직연금 ETF 매매 서비스를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권에선 지난해 11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ETF를 출시한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퇴직연금 ETF 매매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에 이어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퇴직연금 ETF를 출시했으며, 우리은행도 퇴직연금 상품 리스트에 ETF 추가한 상태다.

은행들이 ETF 매매에 가세하는 것은 갈수록 퇴직연금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면, 최근엔 낮아진 점유율로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95조6000억원이다. 이는 2020년 말 255조5000억원보다 15.7% 늘어난 수치로, 1년 새 40조원 이상 불어나면서 300조원 시장을 눈앞에 뒀다. 이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는 추세다. 특히 퇴직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운용의 축이 저축에서 투자로 옮겨가고 있는데, 그 중심에 ETF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도 관련 서비스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증권사로의 머니무브 속도가 빨라졌어도, 증권업계와 은행권의 고객군이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면서도 "수익률 차이가 큰 데다 고액의 장기 고객을 뺏길 수 없다는 생각에 은행들도 모든 대응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미래 먹거리인 퇴직연금 시장을 사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실시간 매매 중개는 증권사 고유 업무영역이라는 금융 당국의 유권해석 탓에 은행들이 출시한 퇴직연금 ETF는 실시간 매매가 어렵다.

가입자가 주문하면 은행이 ETF 매매를 대행하는 방식으로 거래 체결에 시차가 있는 지연 매매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투자자 입장에선 큰 핸디캡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디폴트옵션도 은행권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맞춰 운용하는 제도다. △시기별 목표 조정 펀드(TDF) △장기 가치상승 추구 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펀드 △원리금보장상품 등으로 구성된다.

업계 안팎에선 디폴트옵션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원금 보장이 되는 정기예금 등 상품보다는 채권형 펀드 등 투자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고객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한다. 많은 이들이 높은 수익률을 좇다보면 증권사로의 자금 행렬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운용기간 자동으로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 비중을 조절해주는 TDF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경쟁은 더욱 달아오를 텐데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 없이는 은행들이 경쟁에서 밀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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