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얼어붙고 CB 문턱 높아진다···기업 자금조달 '경고등'
회사채 얼어붙고 CB 문턱 높아진다···기업 자금조달 '경고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사채 완판실패 속출···IPO 줄철회 
내달부터 CB 전환가액 상향 의무화
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내 전경.(사진=서울파이낸스 DB)
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내 전경.(사진=서울파이낸스 DB)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회사채·주식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혁신 기업들이 주로 의존해 온 전환사채(CB) 발행 역시 내달부터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조달에 경고등이 켜졌다.

11일 금융투자협회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회사채 발행 규모는 총 7조6천70억원으로, 지난 9월보다 10.3%(8천720억원) 줄었다. 금리 상승으로 공모 회사채 발행이 부진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 금액 2조8천700억원(46건) 가운데, 참여금액은 7조6천290억원으로, 265.8%의 참여율을 기록했다. 단순 수치만 보면 수요예측에서 흥행을 이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349.7%)과 비교하면 83.9%p나 줄어든 수준이다. 그만큼 회사채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등급별로 볼때 우량채로 분류되는 A등급조차 미매각이 7건 발생했다.

국내외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주식·채권발행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입장이 공식화됐을 뿐 아니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미국보다도 금리 인상속도를 높여야할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제20차 금통위 의사록(10월 12일 개최)에서는 금통위원 6명 가운데 4명이 추가 인상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로인해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고공행진이다. 10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2bp(1bp=0.01%p) 오른 연 1.877%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연 2.309%로 1.6bp 상승했다.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회사채 시장은 조기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뜻하는 '북클로징'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채권 투자에 선뜻 나서는 투자자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이미 수요예측을 실시한 회사채들 역시 흥행 실패가 이어졌다.

지난 9월 말 풀무원식품을 시작으로 한 달여간 우리종합금융, HK이노엔, 더블유게임즈, 디티알오토모티브 등 5개 기업이 공모 회사채 기관 수요예측에서 완판에 실패했다.

이달 9일 수요예측에 나선 이랜드월드(BBB)는 2년만기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서 10억원의 주문을 받는데 그쳤다. 미매각 물량인 990억원중 800억원은 주관회사인 산업은행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가 인수하고 나머지 190억원은 KB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이 인수하게 된다.

지난달 29일에는 2년만에 회사채시장에 복귀한 SK E&S 계열 발전소 운영사인 파주에너지서비스(AA-)가 3년물 400억원과 5년물 400억원 조달에 나섰지만 5년물에서 100억원 미배정이 발생해 뒤늦게 모집금액을 채우기도 했다.

코로나19 충격에 이은 저금리와 유동성 장세가 저물고 있다는 판단에서 주식과 채권을 내놓기만 하면 사들이던 기관투자가의 태도는 최근들어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자금 조달비용의 추가적인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우려 때문이다.

연말까지 수요예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이달 17일 보령LNG터미널(AA·1700억원), 메리츠금융지주(AA·미정), 삼양식품(A·500억원) 등 3곳뿐이다.

채권 발행 시기를 두고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진데다 투자자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식 발행 역시 채권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상장을 통해 공모자금을 조달하려던 기업들은 줄줄이 상장을 철회했다.

IB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여섯 곳의 기업이 상장을 철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상장 철회 기업이 한 달 평균 두 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최근 2주 사이에 기업가치 조 단위의 ‘대어급’으로 평가받던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10월 21일) SM상선(11월 3일) 넷마블네오(4일)가 줄줄이 기업공개(IPO)를 포기했다. 기관들의 냉랭한 반응에 몸값을 기대 이하로 평가받자 스스로 상장 계획을 변경했다.

기관투자가의 참여 열기가 식으면서 지난달 공모주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은 972대 1에 그쳤다. 1000대 1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11개월 만이다. 케이카, 리파인, 아이패밀리SC 등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 그친 곳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수요예측을 진행한 13개 회사 중 4곳은 희망 공모가 하단 이하에서 공모가가 확정됐다.

증권가는 내년 증시 IPO를 계획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쓱닷컴,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일뱅크, 마켓컬리, CJ올리브영 등 100개 이상 기업들의 상장 스케줄에 혹여라도 변경이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마지막 보루'처럼 여겼던 CB 발행 역시 당장 내달부터 여건이 까다로워진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CB 리픽싱(전환가격 조정)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에서 전환가액 상향 조정 의무 방안을 내놨다. 오는 12월부터 주가가 오르면 CB의 전환가격도 연동해 상향 조정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상향 조정 범위는 최초 전환가액의 70~100%로 제한했다.

이번 CB 규정 강화로 인해 코스닥 시장에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B 전환가격 상향이 의무화되면 투자 시세차익이 급격히 줄게 된다. 결국 CB 투자자들은 만기 때까지 채권을 보유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만큼 기업들은 이자 부담을 갖게 된다. 

중형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코스피가 3000선에서 횡보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대다수 기업들이 일반 유상증자를 선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여기에 CB발행 여건마저 까다로워지면서 자금 조달의 한계에 부딪히는 기업들이 다수 생겨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