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대출 옥죄기, 실수요자 대책 절실하다
[기자수첩] 전세대출 옥죄기, 실수요자 대책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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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등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계속 검토하겠습니다."

최근 강도 높은 가계대출 관리로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에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가계부채 규제 강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실수요자는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고 위원장이 취재진과의 만남이 있을 때마다 같은 맥락의 발언을 거듭할 만큼, 요즘 금융권에선 '실수요자 보호' 문제가 이슈다. 금융 당국이 정해둔 대출 총량 등에 맞춰 은행들이 대출을 잇달아 조이면서 서민 돈줄이 마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상반기부터 대출 규제를 추진 중인 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관리 목표치를 연 5~6% 증가율로 설정했다. 당국이 정해놓은 상한선에 맞춰 은행들은 전반적으로 대출을 조절하는 추세다. 자율적으로 심사를 한층 까다롭게 하거나 우대금리·한도를 줄이는 방식이다.

특히 전세대출 문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일부 은행은 속도 조절을 위해 전세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사실상 전세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 실수요 대출을 최후 보루로 여기고 있는 나머지 은행들도 당국의 압박과 가계대출 급증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추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가계부채 추가 대책 발표를 앞둔 당국 역시 전세대출 규제 강화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증가 속도가 유난히 가파른 전세대출을 막자니 실수요자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고, 그냥 두자니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막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과 국민 대다수는 전세대출 규제에 고개를 내젓는 분위기다. 전세대출이 서민의 실수요 대출이라는 점에서 '비 오는데 우산을 뺏는 격'이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 전세대출은 대출이 실행될 때 대출자(돈을 빌리는 사람)가 아닌 집주인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는 구조다. 예외적으로 생활안정자금 전세대출의 경우 대출자 계좌로 입금돼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도 있지만, 비중이 작을 뿐더러 사실상 전세대출로 보기 힘들다. 전세대출의 대부분이 실수요 대출이라는 얘기다.

당국이 강조하는 것처럼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실수요와 그렇지 않은 수요를 구분하는 것이 필수지만, 이마저도 방안이 마땅치 않다. 

전세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차주가 여유자금을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실수요자를 구분하고, 또 관리하기도 어렵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더군다나 실수요자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해도 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은행들이 당국이 제시한 수치를 맞추기 위해 실수요자 보호를 외면할 가능성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의 몫이다. 곳곳에서 전세대출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가계대출 증가의 주원인인 전세대출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가계대출이 올해 4.7% 늘어난 가운데, 전세대출의 경우 3배가량 많은 14.7%의 증가율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 차원의 추가 관리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당국은 규제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자세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연간 목표치를 관리하려면 올해 하반기 전세 대출은 스퀴즈(쥐어짜다)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장에서 실수요자인지 아닌지를 잘 판단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언급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처럼 말이다.

지금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은 지나치게 숫자 줄이기에 쏠려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선 전면적인 대출 규제를 시행하기보다는 실수요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뿐 아니라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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