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굴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인가
[데스크 칼럼] 누굴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위 또는 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가짜뉴스'를 추방하기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한 것인데,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반대 속에 쫓기듯 강행 처리했다.

개정안은 언론의 명백한 고의나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로 물적·정신적 피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 등을 주요 골자로 담고 있다. 

언론계 안팎의 우려를 감안해 예외 조항도 뒀다. 고위공직자와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럼에도 언론계뿐 아니라 국민의힘, 정의당 등 정치권 안팎의 반발과 우려는 여전하다. 

'가짜뉴스'를 추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토록 반대하는 이유는 무얼까.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고 소송이 남발될 수 있어서다.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온 '기사열람 차단'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기득권의 치부 등을 캐 낸 특정 언론사를 대상으로 '줄소송'을 통해 후속 보도나 타 언론사의 인용보도 등을 막거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기존에도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소송을 통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시도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더해질 경우 기자들이 느낄 심리적 압박감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기자 스스로 본인을 통제하는 '자기검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짙다. 자기검열은 국민에게 제공할 알권리를 막는 퇴행적 조치다.  

더구나 해외 사례와 달리 고의·중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 역시 허위·조작을 주장하는 당사자(원고)가 아닌 사실상 언론이 지게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고 믿는다. 진실의 순간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단초가 된 '정윤회 문건 파동'을 특종 보도한 세계일보 박현준 기자가 지난 2015년 3월 관훈저널 기고문에서 밝힌 대목이다. 

정윤회 문건 보도 역시 초반에 많은 '외압'과 '역공'을 감내해야만 했다. 정윤회 문건 기사처럼 많은 보도들이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불순한 시도와 음해에 맞선 뒤 재조명받은 경우 적잖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 순기능마저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권력형 비리를 캐내는 데 족쇄가 될 수 있어서다.  

'가짜뉴스'는 독자나 시청자, 즉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민의를 오도하게 만든다. 나아가 오도된 여론 뒤에 숨어 실체적 진실을 은폐한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짊어져야만 한다. 이런 해악을 감안했을 때 가짜뉴스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 있는 일에 여당은 '단독 처리'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강행했다. 가짜뉴스를 근절한다는 명분 아래 민주당이 또 다른 '민의'를 왜곡한 게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된다. 남은 기간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김창남 금융부장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지홍 2021-09-14 15:31:37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