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일본기업과 한국기업
[홍승희 칼럼] 일본기업과 한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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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는 세계 100대 기업 명단에 일본 기업들이 여럿 포함됐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기업 하나가 100대 기업에 들면 국내 모든 언론이 요란스레 보도하던 우리로서는 꽤 부러운 현상이었다.

그랬던 일본 기업들이 근래 들어서는 경영부진으로 몰락해 해외 자본에 팔려나가는 사례가 부쩍 늘며 요즘은 도요타자동차를 제외하면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기업들이 부쩍 줄었다. 한일관계 냉각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미쓰비시의 경우는 자칫하면 그간 영업을 해온 전 세계로부터 소송전에 휘말릴지도 모를 대형사고까지 쳐버렸다. 단순 사고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저질러온 비리가 발각된 것일 뿐이지만.

아무튼 요즘 일본 기업들을 보면 한 때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의 초라해진 현재가 종종 의아하게 생각된다. 세계의 팽팽한 기술경쟁에서 한걸음 뒤처져 보이는 일본 기업들을 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리저리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러다 최근 일본 기업문화를 잘 아는 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비로소 고개를 끄떡이게 됐다. 한국의 기업들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오너가 있거나 책임경영자가 있거나 어쨌든 경영자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또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그가 지는 기업문화를 가지는 데 비해 일본은 꽤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이사회가 각기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최종 결정은 대표가 내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외형상 우리 기업의 이사회와 비슷해 보이는 취체들이 있고 대표가 있지만 그들 사이에 권한의 차이는 별로 없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수직적 결정구조를 갖고 있다면 일본은 수평적 구조를 갖고 있어서 일견 매우 민주적인 구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일의 결과에 대해 서로 책임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주장을 잘 하지 않다보니 결정과정이 매우 길고 또 향후 책임소재도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렵고 또 적기투자를 실현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마치 한국기업이 군주제 조직이라면 일본기업은 봉건제 조직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일본기업들의 선택이 매우 안전할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가 매우 빠른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어렵도록 발목을 잡는 역기능을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형 기업 결정구조는 빠른 결정과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지만 위험요소 또한 크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형인 셈이다. 그에 비해 일본형 기업 결정구조는 얼핏 보기에는 안전해 보이지만 한꺼번에 큰 손실은 피할 수 있어도 성장과 발전이 빠른 사회에서 실상은 후퇴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업의 구조는 그 사회의 정치·사회 시스템과도 닮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의 기업이 한국의 정치 구조를, 일본의 기업이 일본의 정치 구조를 닮아 보인다.

일본 정치에서도 보면 그 사회의 흘러가는 분위기는 분명하고 또 이를 끌고 가는 세력이 분명 있을 테지만 어떤 실행이 있은 후에 보면 결과적으로 아무도 책임질 사람은 없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은 실제 책임졌어야 할 상관 대신 밑에 사람들이 자살로 끝을 내는, 이해하기 난해한 사회다.

이런 문화는 어쩌면 ‘할복’으로 책임을 대체하던 봉건사회의 유습이 여전히 일본사회에 잔류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대에 와서는 책임지지 않으려 결정을 서로 떠미는 풍토로 변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내내 일본기술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 스타일까지 따라하기 바빴던 한국 기업인가 싶었더니 언제부터 일본과 한국의 기업문화는 이리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원래 기질적 차이 때문에 처음부터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기업문화는 IMF 구제금융을 받고 체질개선을 하는 시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변화했다.

그게 결정적 계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꽤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답답하던 한국 기업들이 한일 경제 전쟁이 터진 이래 보여주는 활발한 연구 활동이나 과감한 투자전략 등은 꽤 신선하다. 젊은 네티즌들 주장처럼 '한국인들은 국난극복이 취미'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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