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 고려하지 못하는 '화폐환상' 현상 뚜렷"
한은 "물가 고려하지 못하는 '화폐환상' 현상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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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화폐환상 경향 더욱 높아···'합리적 무관심' 영향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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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최근 우리나라에서 물가 변동을 고려하지 않고 명목적 가치가 상승한 것을 실질적인 가치가 상승했다고 판단하는 이른바 '화폐환상' 현상이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가 상승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적을수록 화폐환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으며, 화폐환상 경향이 강할수록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BOK경제연구'에 실린 '한국의 화폐환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18년 6~7월 서울 및 4대 광역시(부산·대구·대전·광주)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화폐환상이란 경제주체들이 물가변동을 고려한 후의 실질가치가 아닌, 화폐의 명목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향을 말한다.

설문 결과, 다수의 응답자는 주택거래나 일반거래에서의 손익 평가, 임금수준이나 공정성 판단 시 실질가치보다 명목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와 명목임금이 동일하게 상승했다면 실질 임금에는 변함이 없지만, 노동자는 이에 대해 임금이 상승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주택을 똑같이 2억원에 매입하고, 1년 뒤 각자 다른 물가상승률이 적용된 상황에서 주택을 매도하는 가정을 해 봤다. 물가가 25% 하락한 지역에 사는 A씨는 매입액보다 23% 적은 1억5400만원에, 물가상승률에 변동이 없었던 지역에 사는 B씨는 매입액보다 1% 적은 1억9800만원에, 물가가 25% 상승한 지역에 사는 C씨는 매입액보다 23% 많은 2억4600만원에 매도했다.

이에 대해 주택거래에 대해 거래를 잘한 순서대로 1~3등을 나열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56.4%는 가장 투자를 잘한 사람으로 C씨를 선택했다. 하지만 C씨는 명목수익률만 높을 뿐, 실질수익률(-2%)은 가장 낮았으며, 실질수익률이 가장 높은 A씨를 선택한 사람은 25.4%에 불과했다. 

이같은 화폐환상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적게 나타났지만, 단순히 인지력이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 이해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합리적 무관심'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황인도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은 "실제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화폐환상지수가 오히려 높았고, 인플레이션 변동 시 실질가치 변화에 관한 문제를 맞췄는지 여부는 화폐환상지수와 유의미한 연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이는 최근에 경험한 인플레이션이 낮고 안정적인 경우 실질가치를 계산하는 데에서 오는 이득비용(정보 습득·처리 비용)보다 작아 물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화폐환상이 큰 지방 거주자의 경우, 가계의 순자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화폐환상이 가계의 자산축적에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제연구원은 설명했다. 황 연구위원은 "서울에서 약하게 화폐환상이 가구 순자산에 플러스(+)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조사 당시 서울과 지방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달라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화폐환상이 큰 가계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최적의 자산배분을 이뤄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성인들은 '손실회피(얻는 가치보다 잃는 가치를 크게 평가해 게임이나 투자를 회피하려는 경향)', '준거점 의존성(절대적인 수치보다, 기준이 되는 준거점 수치로부터의 차이가 클수록 만족도가 높은 경향)', '프레이밍 효과(질문이나 문제 제시 방법(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 또는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 등의 행태적 편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성인들이 화폐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번 분석 결과는 거시경제 분석과 예측 등에 있어 실질변수 못지 않게 명목변수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라며 "프레이밍 효과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향후 경제정책 수립 및 의사소통 시 이같은 행태적 속성을 감안해 정책을 설계하고, 경제주체와 소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연구 결과가 설문조사 3년 뒤에 발표돼 최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최근 3년간 인플레이션 영향력이 상당히 높아 물가에 대한 인식 및 주택투자 비중 응답도 달라졌을 수 있다"라며 "조사 당시와 지금 상황이 많이 다르고, 현재 조사한다면 결과도 상이하게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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