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바이든發 투자 압박···車 반도체 생산 요구까지 '진퇴양난'
삼성전자, 바이든發 투자 압박···車 반도체 생산 요구까지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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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백악관 '반도체 화상회의' 개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이 모여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이 모여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전경(사진=삼성전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세계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을 백악관 화상회의로 불러 모았다. 반도체 부족 사태에 강력 대처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쟁에 맞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날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의 행보에 주목된다. 당장 미국의 요구에 화답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 "차량용 반도체 생산하겠다"는 인텔에 고민 깊은 삼성  

백악관은 이날 삼성전자 등 19개 업체가 참여하는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화상회의 형태로 진행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주재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참석했다.

초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 대만의 TSMC, 구글 모회사 알파벳, AT&T, 포드, GM, 미국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 파운드리, HP, 인텔, 마이크론, 방산업체 노스럽 그러먼,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회사 NXP 등이다. 삼성전자는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최시영 사장(파운드리 사업부장)이 참석했다. 

최시영 사장은 이날 회의에서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회의가 반도체 공급부족에 따른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의 생산 중단에서 촉발된 만큼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확대 방안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회의에 참석한 인텔 겔싱어 CEO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인텔 공장 네트워크 안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을 설계 업체와 논의 중이며 6∼9개월 안에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며 백악관의 요구에 답했다.

이는 TSMC 등 파운드리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삼성전자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분야에선 글로벌 최강자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차량용 반도체는 국내 기업들이 주력으로 하는 초미세화 공정을 통해 생산하는 고성능 메모리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PC·클라우드 서버 등 제품 교체 주기가 짧은 IT 기기에 주로 장착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은 최장 10년 이상 운행하는 자동차에 탑재돼 제품 사이클과 보증 기간이 길다는 점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생산을 꺼렸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국내 공급사 입장에서 원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데다 가격적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은 만큼 다른 제품들을 주력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차량용 반도체는 장기 주문을 받아서 생산에 들어가는 만큼 캐파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당장 공정을 바꿔 생산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 미국 투자 확대 요구에 삼성 오스틴 반도체 증설 계획 확정하나

여기에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체계를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내 반도체 투자도 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직접 들고나와 반도체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경쟁력은 기업들이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 본토에 더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중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대해 거센 요구를 지속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미 미국의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은 새 정부 정책에 부응해 20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새로운 팹(공장)을 건설해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의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짓는데 이어 이번 반도체 공급 부족에 협력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해 3년 간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회의 초청에 응답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미국에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유력 후보지인 텍사스주(오스틴)와 새로운 인센티브 방안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겨울 한파로 오스틴 공장이 '셧다운' 된 이후 사업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간 강조해 온 대규모 M&A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확산한 반도체 수급 문제를 해소하고 설비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업체를 인수, 기술영역을 확장하면서 현재 직면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미국과 함께 주요 시장인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반도체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데 중국의 경우 이와 비슷한 20% 수준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미국 수준의 증설이나 신규 투자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선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백악관의 초청에 이어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요구 받은 삼성전자가 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게다가 미국 정부가 자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 당국의 압박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기업들에겐 큰 부담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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