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현대자동차도 지난 4월 7일부터 울산1공장 가동을 멈췄다. 과거에는 기계로만 작동하던 자동차가 전자부품이 없어 생산을 못하는 사태까지 발행한다니 격세지감이다.
자동차전문 컨설팅업체에 따르면 2월 중순 기준 반도체 공급 사태로 하루 이상 생산을 중단한 자동차 공장은 전 세계 85곳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36곳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유럽과 북미가 각각 26곳, 23곳이었다.
차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한대에 반도체가 200~300개 가량 들어간다. 전기차 출시로 자동차의 전장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들 반도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그런데 반도체가 없어 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슨 일이 있어난 걸까.
우선 차 업계에서 수요예측에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코로나의 확산과 지연을 예상하기 어렵듯이 수요가 이렇게 빨리 반등할 지 몰랐던 것이다. 더욱이 주요 반도체 공급사인 일본 르네사스와 대만 TSMC의 화재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는 빨리 해결될 수 있을까. 전문가에 따르면 상황이 쉽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는 이슈도 그렇지만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후순위다. 마진이나 물량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서버 등)에 물건을 대기도 바쁜 상황에 굳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설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진 않지만 그나마 내부 추진해 온 설계 역량 확보를 후순위로 밀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수익성으로 보자면 그 판단이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대신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반도체 설계 역량 확보에 나서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현대자동차는 어떤 기업으로부터 차량용 반도체를 조달 받을까. 구체적인 조달 체계는 영업기밀이기에 내막을 속속 알 수 없지만, 전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르네사스·NXP·인피니온·텍사스인스트루먼트·마이크로칩·ST마이크로일렉크로닉스 등이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대만·미국·일본·독일·네덜란드 등 글로벌 업체들이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다.
특히 현재 품귀 현상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는 이를 위탁제조(파운드리)하는 TSMC가 주로 생산하고 있다. TSMC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의 전 세계 생산량 70%를 책임지고 있다.
반도체 리드타임이 평균 6주에서 피크에선 그 두배 이상이 걸리기도 때문에 단기간에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어려울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에 업계는 제조 공정이 복잡한 반도체 특성상 단기간에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 완성차 시장의 반도체 수급난이 올 3분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만 해도 타사가 먼저 쇼티지가 날 때 올 1분기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최근 2분기부터 문제가 생겼다. 재고분을 더 가져갔음에도 수요예측에 실패한 셈이다.
이는 자동차 및 제조사의 재고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효율화하는 저스트인타임(JIT)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JIT의 대명사 일본 도요타는 상대적으로 반도체 수급문제를 잘 수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동일본 대지진(2011년) 등을 반면교사 삼아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1200여개를 선정해 이를 공급하는 협력 업체에 최소 2개월에서 6개월 생산 분량을 재고로 확보하도록 생산망을 관리해 오는 등 기존 JIT를 수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요타 역시 지금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찌 될 지 모른다.
더욱이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반도체 영역으로 집결될 때 차 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은 반도체 자급률이 12%에 불과해 이미 바이든 집권 후 후속 조치를 실행해 가고 있다.
전기차 출시 가속화로 전장화 또한 빠르게 진전되기 때문에 차 부품의 반도체 비중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고 차 업계와 반도체 업계 간 미래 가치사슬 관계에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확보했지만 차량용 반도체 품목에서는 90% 이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차 업계와 반도체 업계간 공조 체계를 재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특히 국내 차량 반도체 분야 팹리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대부분 연매출 10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이 대부분으로 관련 전문인력과 기업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