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직업성 암' 200명대?···"WHO 기준 적용시 1만명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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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시민단체 '우리나라 직업성 암 실태·개선방안' 토론회
"직업성 암 인정, 신규 암환자의 0.01%···'가능성'으로 판단해야"
전문가 "기업 영업비밀 이유로 입증 한계···사회적 관심 높여야"
24일 전문가들이 직업성암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주진희 기자)
24일 전문가들이 직업성 암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주진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주진희 기자] 국내 산업재해 노동자 중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사례는 신규 암 환자의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직업성 암은 입증하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인과관계'가 아닌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정춘숙 의원실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 암 환자찾기119(직업성암119)는 2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우리나라 직업성 암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첫번째 발제에 나선 이윤근 노동환경 건강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직업성 암 실태와 암 환자 찾기'라는 주제를 두고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매년 전세계 신규 발생 암 환자의 4% 정도가 직업성 암에 해당된다. 이를 국내에 적용하면 9600명 수준에 달한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는 환자는 매년 200여 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이 제시한 '국내 직업성 암 산재 승인 건' 자료(2015-2018)를 보면 2015년 83건, 2016년 113건, 2017년 178건, 2018년 205건에 그쳤다. 이는 신규 암환자의 0.01%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국내 직업성 암으로는 폐암이 가장 많고 혈액암, 중피종, 간암, 유방암이 뒤를 이었다. 직업성 암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제조업과 광업, 건설업에서 근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소장은 또 "산재 사망자 비율로 집계해도 한국에서 인정되는 직업성 암은 극히 드물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ILO가 발간한 2017년 전 세계 산재 사망자 현황 보고서에는 연간 산재로 273만명이 사망하는데, 전체 사망자의 26%(71만명)가 직업성 암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 국제산업보건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주카 타칼라가 연구한 결과에서는 유럽의 산재 사망자 중 직업성 암이 원인이었던 경우가 53%에 달했다. 

반면 2019년 기준 국내 산재 사망자 가운데 직업성 암으로 인정된 건 단 6%(125명)에 불과했다.

국내와 국외의 직업성 암 산재 승인 현황 및 사망자 비교 표. (자료=이윤근 노동환경 건강연구소)
국내와 국외의 직업성 암 산재 승인 현황 및 사망자 비교 표. (자료=이윤근 노동환경 건강연구소)

이어 발표에 나선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국내 직업성 암 산재 신청이 적었던 이유에 대해 "기업의 군사적 노무관리 문화와 기업·고용주가 현장 내 발암물질에 대한 교육이나 안전점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코의 경우 최근 폐섬유화증 사건에서도 분진 노출기준이 안정권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등 직업성 암 산재를 늘 무시하거나 왜곡했다"며 "정부 또한 과학고 교사들에게 3D 프린터의 사용과 교육을 장려하면서도 직업성 암이 발병할 가능성과 유해성에 대해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어진 토론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직업성 암 산재인정 기준 확대 △의료기관의 사전점검 시스템 구축 △빅데이터를 활용한 직업성 암 찾기 등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조승규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는 "기업에서 영업비밀을 이유로 협조해주지도 않고 특히 인정사례가 없는 산업·공정·업무·질병 등에 대해서는 입증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직업성 암은 '인과관계'가 아닌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어 기준치와 노동자를 위한 절차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봉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 분회장도 "현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며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 등을 확대하고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효과적인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은미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해 노동, 시민사회와 산재 유가족 등과 함께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산재를 줄일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첫 발판을 올해 1월 마련했다"면서도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암과 같은 직업성 질병 실태를 제대로 드러내고 조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심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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