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김태선 나무EnR 대표 "탄소배출권 시장, 완전 자율에 맡겨야"
[피플] 김태선 나무EnR 대표 "탄소배출권 시장, 완전 자율에 맡겨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영 7년차, 일관성 없는 정부 개입에 시장 제대로 안돌아"
"내년 증권사·개인투자자 참여 앞서 장내 거래 강화해야"
김태선 나무EnR 대표 (사진=나무EnR)
김태선 나무EnR 대표 (사진=나무EnR)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이 벌써 7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가 시장 운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23일 기자와 만난 김태선 나무EnR 대표가 쓴소리를 뱉었다. 

김 대표는 "탄소배출권 시장 운영은 기업들이 배출권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시장 매커니즘에 맡겨)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데 정부가 자꾸 감놔라 배놔라 하니까 오히려 시장이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권(KAU)은 환경부가 기업에 할당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환경부의 고시에 따라 할당대상업체로 지정돼 KAU를 100만큼 할당받았다면 이 기업은 온실가스를 100까지 배출할 수 있는 식이다. 

만약 A기업이 제품을 많이 만들어 탄소를 150 배출했다면 100을 초과한 50을 시장에서 사들여야 한다. 초과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가격의 3배를 과태료로 물어야 한다. 반대로 공정 개선 등을 통해 배출량을 80으로 줄였다면 남은 20은 내년으로 이월해 사용하거나 시장에 내다팔 수 있다. 

이같은 매매 과정을 통해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자연스럽게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도입한 이유다.

현재 685개 기업이 지정돼 한국거래소(KRX)에서 KAU를 거래하고 있다.

환경부는 탄소배출권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책임이 있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KAU 가격이 조금만 급하게 올라도 기업들에 배출권 매입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거나 시장에 배출권을 공급하는 등 직접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그 반대인 급락 상황에서는 시장에 어떠한 시그널도 주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시장에 KAU가 남아돌자 이달초 시장 가격은 1만8000원대에 형성됐다. 1년전 3만9000원~4만원대의 절반 아래로 뚝 떨어지는데도 시장의 배출권을 회수한다는 계획은 없었다. 또 매달 둘째 주 수요일 진행했던 탄소배출권 경매도 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기준가격과 매수 개입 지점(0.6배), 매도 개입 지점(2배, 3배) 등 시장 안정화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고 있다"며 "시장 안정화에 대한 세부 대응책이 마련돼 있으면 시장 참가자들이 KAU의 가격 변동에도 정부가 어떻게 할 지 추측해 다음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문제는 정부가 '개입 지점'에 다다랐을 때 어떤 방법을 취할지 디테일한 내용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일관성 없는 개입으로 KAU 가격이 급변할 때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지 알 수 없어 시장참가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세부 대응책을 보강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완전히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U의 장내 거래를 강화하는 등 시장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배출권 거래는 장내거래(2020년 9월 30일 기준 누적 43.3%), 장외거래(56.7%), 유상할당경매(8.7%)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절반 이상이 장외에서 기업 당사자끼리 이뤄지는데, 거래 가격이 공개되지 않고, 거래 여부도 1년 뒤에야 알 수 있어 KAU 가격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유상할당경매의 경우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3차 계획기간부터 기존 3%에서 10%로 확대되지만 발전사들처럼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이 높은 가격을 써내 물량을 독점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그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이익과 무관하게 자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낙찰 받을 수 있도록 시장가보다 높은 금액을 써 내는 식으로 독점할 수 있다"며 "경매 시장을 공기업 부문과 민간기업 부문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은 채 이르면 내년부터 증권사·개인투자자 등 제3자 시장참여가 시작될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시장 유동성이 더욱 부족해질 가능성이 크다. 거래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장내거래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장내거래가 강화돼야 파생시장도 제대로 형성된다. 파생시장이 생기면 시장 참가자가 배출권을 이월할 때 파생시장에 선물을 매도해 가격 급락 위험을 보완할 수 있다. 반대로 배출권을 매도할 때도 선물을 사들이면 된다.

김 대표는 유동성 확보와 개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전기차 구매시 배출권을 지급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주택을 구입할 때 매입하는 국민주택채권처럼 전기차 등 미래차를 구입할 때 보조금 대신 배출권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배출권을 받은 개인이 차량 구입 자금으로 활용하겠다면 즉시 시장에 팔아 현금화하면 되고, 시장 추이를 살피며 보유하고 있다가 가격이 올랐을 때 조금씩 현금화할 수도 있다. 전기차 사업자라면 대량으로 차량을 구입했을 때 기업들에 배출권을 유리한 가격으로 매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처음부터 투자은행(IB)이 시장조성자로 들어오고, 개인도 증권사를 통해 위탁매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면 다양한 거래가 개발돼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이 됐을 것"이라며 "7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