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 '책임공방'엔 서글프다
성난 민심, '책임공방'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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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yushin@seoulfn.com>국보 1호 숭례문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화재 사건을 놓고, 신구정권 간 책임공방이 뜨겁다. 이에, 민심은 지금 책임공방을 벌일 때냐며, 국보 1호가 잿더미가 된 상실감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같은 정치권의 행태에 분기를 넘어 서글픔마저 느끼는 분위기다. 

닷새간의 긴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공중파 방송의 메인뉴스 말미에 터져나온 급보. 남대문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이 짧게 전파를 탔다. 방송사도 긴 연휴분위기 탓인지 뉴스속보를 통해 간간히 후속소식을 전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보도내용은 웬지 미흡했다. 화면에 비쳐진 남대문 현장그림은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지만, 누가 봐도 그렇게 상황이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빨리 발견돼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비쳐졌다. 아마도, TV시청자들은 대부분 방화가 됐든 누전에 의한 화재가 됐든, 소방당국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할까 하는 일종의 '안도감'을 가지고 지친 연휴의 마지막날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
이튿날인 11일 아침 조간 신문을 집어든 순간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놀라움과 함께, 그에 못지 않은 분노가 치밀어 오를 뉴스를 접해야 했다. 밤 사이에 모두 타 버린 남대문의 흉칙한 사진과 함께, '국보1호도 못 지킨 대한민국', '국보1호 남대문 불타 무너졌다' 등의 대문짝 만한 제목이 붙은 1면 톱기사를 접해야 했던 것. 이럴수가! 도대체 소방당국은 뭘 했단 말인가!  

문제는 정치권이다. 이날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정권이 안전업무에 허술하고 엉뚱한 데 신경을 쓴 결과"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로 문화재 관리와 보호체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정부혁신은 정말 필요하다며, 화재와 정부조직개편안을 연결시키는 '순발력'까지 발휘했다. '기민함'인지 '견강부회'인지 모르겠지만. '잘못되면 무조건 노정권 탓'이라는 세간의 농담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자, 여권 쪽에서도 공세로 맞받아 치고 나왔다.
이명박 당선인의 책임론을 펴고 나선 것.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숭례문의 개방을 주도한 것이 화근이라는 주장이다.

이 당선인은 2002년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광화문과 숭례문이 시민과 더욱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보행공간으로 넓히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세계적인 우리 유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고 했고, 그 이후 2005년 5월 27일 숭례문 주변 광장이 개방된 데 이어 이듬해 2층 누각을 제외하고 숭례문이 완전 개방됐다.

그리고, 이 당선인은 자서전에서 "숭례문 개방 또한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숭례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국보 1호라는 숭례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다. 차도로만 둘러싸여 있던 숭례문이 근 1세기만에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자부심과 함께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연유로,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책임공방이 치열하다.
현 정권을 탓하는 의견과 함께 이 당선인의 숭례문 개방 정책과 안전대책 없는 섣부른 개방이 이같은 비극으로 이어진 만큼, 이 당선인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문화재청도, 서울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총선을 의식한 듯한 이같은 책임공방의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니탓 내탓할 때인가'하는 국민들의 성난 질책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적어도,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민규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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