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모든 약속을 위반·부인하고 있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재무적투자자(FI) 어피너티컨소시엄) vs. "신 회장은 최선을 다했다."(교보생명)
교보생명 투자 지분의 풋옵션(특정가격에 팔 권리) 가격 평가 과정을 두고 교보생명과 FI가 연초부터 치열한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신 회장 측인 교보생명의 고발로 검찰이 풋옵션 행사 가격에 관여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어피너티컨소니엄 관계자를 기소하면서다.
검찰 기소로 수세에 몰린 어피너티컨소시엄은 풋옵션 가격 산정은 정당했다며, 경영권 유지를 위해 신 회장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지 않은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날을 세웠다. 교보생명은 검찰이 FI와 안진회계법인의 부당한 공모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 핵심이라고 응수하며 양 측의 '네 탓 공방'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검찰이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안진회계법인 관계자 3명과 FI 관계자 2명을 기소한 게 이번 공방의 시발점이 됐다. 검찰은 교보생명과 주주간 계약을 체결한 FI가 풋옵션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안진회계법인이 공정시장가치(FMV) 평가기준일을 FI에 유리하게 산정했다고 결론 낸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이 알려지자 교보생명의 FI인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입장문을 내고 "관련 가치평가가 적법하고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측을 사기·특경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지분율 33.78%)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했던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어피니티컨소시엄과 2015년 9월말까지 교보생명의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컨소시엄내 각 주주들에게 그들이 보유한 주식 매수를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어피니티컨소시엄(지분율 합계 24%)은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베어링 PE, IMM PE등의 사모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으로 구성됐다.
이후 교보생명이 2015년 9월말까지 IPO를 못하자, 어피니티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안진 회계사들이 교보 주식을 주당 40만9000원으로 평가했다. 이는 매입 원가인 주당 24만5000원의 2배에 가깝다. 신 회장 측은 20만원 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은 재무적 투자자에 의한 풋옵션 분쟁으로 발생한 회사 피해의 주원인이 안진회계법인이 고의적으로 부풀린 주식가치 평가에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4월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신 회장이 IPO 약속 어기고, 풋옵션 가격도 제시 안 해" =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의 약속 불이행이 모든 사건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이 FI와 체결한 계약서에는 2015년 9월30일까지 교보생명이 상장되지 않으면 신 회장이 투자자의 지분을 다시 매수하기로 약정돼 있다"며 "FI는 예정된 상장 기한 이후 3년 뒤인 2018년 10월에야 풋옵션을 행사했다"고 했다.
이어 "풋옵션은 신 회장이 약속한 것에 따른 것으로 계약서에 근거해 합리적이고 정당하고 적절한 권리 행사"라며 "신 회장이 이러한 자신의 모든 약속을 위반하고 부인하고 있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 가격이 과도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교보생명이 자체적으로 매년 평가해 작성한 회사의 내재가치는 FI 측 감정가(주당 40만9000원)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항의했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비상장사인 교보생명의 가치는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이 없으므로 이를 산정하기 위한 방법과 절차가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주간 계약에 따라 쌍방이 평가액을 제출해야 했지만, 신 회장 측은 가격 제시는 물론 평가기관도 지정하지 않았다. 이는 계약에서 정한 절차 자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회장이 지정한 다른 평가기관이 (신 회장이 생각하는 가격이라고 추정되는) 20만원을 산출했다면 양 측의 가격차이가 10%를 넘어 두 가격이 무효가 됐을 것이라는 게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주장이다. 이 경우 다시 협의를 통해 제3의 평가기관에 가격 산출을 의뢰했겠지만 신 회장 측은 가격 제시는 물론 평가기관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FI가 협상 응하지 않았다···주주 분쟁으로 회사 손해 발생" = 교보생명은 FI와 안진회계법인이 풋옵션 가격에 대해 부당한 공모를 한 것이 핵심이라고 맞받았다. IPO 지연도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교보생명은 "어피니티컨소시엄 측과 안진회계법인은 검찰에 기소까지 됐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 커녕 본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를 하고 있어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교보생명은 "IPO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도록 돼 있었고 신 회장은 최선을 다했다"면서 "그러나 저금리와 자본규제 강화라는 보험업계에 닥친 재난적 상황에 부딪혀 IPO를 이행할 수 없었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이 사실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어피니티컨소시엄 측도 잘 알고 있었고, 이와 별개로 신 회장이 어피니티컨소시엄 측 대표와도 수차례 논의한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교보생명은 "주주간 분쟁이 격화되자 회사의 정량적∙정성적 손해가 발생∙확대 됐고 이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집행부가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며 "회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신 회장은 공정시장 가격보다 어느 정도 높은 가격으로 협상하려는 의사를 어피니티측에 전달했으나, 어피니티컨소시엄 측이 안진회계법인의 평가금액 40만9000원을 근거로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FMV의 부당함을 제기해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회사 손해 축소에 시급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검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안진회계법인의 평가보고서를 근거로 2019년 3월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법원에 국제중재를 신청한 상태다. 양 측은 풋옵션 가격 산정의 적정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르면 상반기 내, 늦어도 3분기 중에는 중재 결정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재 결정은 법원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