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필수다?
영어는 필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yushin@seoulfn.com>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공교육 강화를 부르짖고 있다. 영어 전용 교사 2만3천명을 신규 임용해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어를 잘해야 잘산다’, ‘영어가 출세의 지름길이냐’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못하는 나라보다 훨씬 잘산다고 말한 바 있다.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분명 현 세계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반드시 잘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라는 생각이다.
국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충실히 살아간다면 사실 영어를 전혀 못하더라도 삶에 별다른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삶에 부수적인 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영어가 업무진행에 꼭 필요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지구촌 시대라 해도 한국인 모두가 영어와 관계된 직종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필수인 직종보다는 그렇지 않은 직종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영어가 필수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과 필요에 의해 영어를 배우면 되는 것이다. 단지 세계가 지구촌화되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일종의 능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백번 양보해서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쳐도, 그렇다면 국어를 없애버리는 게 실질적으로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말 그대로 전국민의 영어 생활화만을 위해서는 영어를 우리네 공용어로 채택해버리면 간단한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탁선산 씨의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보면, 이미 대부분 문화가 미국화돼고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처한 현실 속에서 차라리 미국의 52번째 주로 편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낫지 않냐는 대목이 나온다. 현재 국내 대부분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그 주인이 외국인인 상태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껍데기만 걸치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지적임과 동시에 한국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최만리 등의 집현전 학자들은 중국문화·제도를 섬기고 따라오던 상황에서 한글을 창제하는 것은 중국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반발했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중국이야 말로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종대왕이 굳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무었이었을지. 단순히 잘살기 위해서는 한자 교육을 강화했으면 됐을 텐데 말이다.
미국인들이 과연 현재 우리나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대부분 미국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만약 인지한다면 우리를 어떤 식으로 볼지. 생활양식은 대부분 자기네 문화를 따라하고 심지어 자기네 언어를 필수로 여기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감정이입이 쉽도록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 우리네 사정을 대입시켜보자. 만약 베트남 국민 대다수가 한국 문화에 맞춰 살아가고 취업 등 출세를 위해서는 한국어가 필수로 여겨진다고 가정해보자. 거기다 이제는 공교육을 통해 어릴 때부터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일차적으로 우리들의 우월감을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론 조금은 한심하거나 의아하지 않을지.
영어를 공교육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사교육이 조장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사교육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든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살아보겠다는 데 집착하는 사회인식의 병폐이지, 공교육 강화라는 수단적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인식이 자리잡지 못한다면 그 어떤 수단으로도 그 병폐는 해소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민규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구지맞춤법 2008-02-02 00:00:00
구지=>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