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채권 재분류·매각 '착시효과' 심화···고무줄 RBC
보험사 채권 재분류·매각 '착시효과' 심화···고무줄 R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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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硏 "생·손보사 채권 재분류·매각 사례 급증"
순익 중 채권처분이익 비중 생보 62%·손보 87%
"제로금리 시대, 건전성 지표·수익구조 개선 필요"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자본 확충이 미흡한 일부 보험사가 채권의 자산 분류를 반복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지급여력 지표를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 아니라 보험사들은 최근 수년간 순이익 확대를 위해 채권 매각에 적극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채권 재분류 및 매각을 통해 보험사들은 회계장부상 건전성 및 수익성 지표가 개선됐지만, 이는 수치상의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보험연구원이 발간하는 'KIRI 리포트'에 실린 '채권 재분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부터 작년 3분기까지 10년간 생명보험사 24곳 중 13곳이 채권 재분류를 시행했다.

장기손해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 15곳 중 6곳도 채권을 재분류했다. 생보사 10곳과 손보사 4곳은 2차례 이상 채권을 재분류했고, 그중 생보사 3곳과 손보사 2곳은 재분류 횟수가 3회 이상 달했다.

채권은 매도가능금융자산 또는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어 이를 재분류하게 되면 자본 확충 없이도 장부상의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수 있다. 

현행 회계 기준에 따르면 매도가능금융자산은 시장 가치로, 만기보유금융자산은 원가로 각각 평가된다. 금리 하락기(채권가격 상승기)에 채권을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하게 되면 추가 자본 확충 없이도 장부상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자본력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도 상승하게 된다.

금리가 계속 하락한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생보사 8곳은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해 금리 추세를 자본 확충에 활용하는 추세가 관찰됐다.

손보사는 금리가 급격히 하락한 2016년 전후로 매도가능증권으로 채권 재분류가 집중됐다. 반대로 금리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된 채권은 가치가 내려가고 RBC 비율은 하락하게 된다.

보험연구원 노건엽 연구위원은 "일부 보험사는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 후 RBC 비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으나 금리 변동으로 RBC 비율이 하락하자 채권을 다시 만기보유증권으로 재분류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보험사는 채권 재분류를 RBC 관리 수단으로 활용한 탓에 금리에 따라 RBC 비율 변동성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노 연구위원은 "주로 중소형 생보사들이 채권 재분류 반복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또 "작년 3분기에 보험사의 RBC 비율이 전체적으로 7.5%p 개선됐으나 4분기에 금리가 제법 상승했기 때문에 올해 들어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 RBC 비율이 나빠졌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보고서는 "새로 도입될 시가기준 신(新)지급여력제도(K-ICS)는 모든 자산과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므로 채권 재분류로 지급여력비율을 관리할 수 없다"며 "이익의 내부 유보, 유상증자, 신종자본증권 등 근본적인 자본 확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채권 재분류 뿐 아니라 채권처분도 증가하면서 보험사들의 순이익 가운데 채권처분 이익 비중도 확대되는 추세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보험사들의 순이익 가운데 채권처분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명보험은 62%, 손해보험은 87%까지 상승했다.

만약 채권 처분이익이 없었다면 생보업계의 순이익은 3조1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손보업계는 2조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급감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 2020년 역시 보험사들이 채권처분에 적극 나섰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지난해 역시 보험사들의 순이익 가운데 채권처분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채권 처분 역시 채권 재분류와 마찬가지로 회계 지표상의 수치적인 개선효과를 이끌어 내는데 불과해 보험사들의 근본적인 사업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채권 매각은) 미래의 이익을 앞당겨 실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과도한 채권 매각은 국내 보험산업의 이익 구조가 건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제로금리 시대에 대비해 보험사의 사업 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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