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팬데믹과 음모론
[홍승희 칼럼] 팬데믹과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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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각종 음모론은 늘 어느 사회에나 일정 부분 존재해왔다. 물론 처음엔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됐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확인되는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음모론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런 이들이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음모론에 빠져드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처음 음모론이 사회적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정치인들의 무지와 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추종에서 출발한 경향이 강하다. 특히 미국에서 대통령부터 나서서 과학적 대응방식을 부정하고 무시하려 들며 싹트고 번져나갔다.

이런 분위기가 유럽으로 번져가고 최근에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세력을 넓혀가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일부에서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특정집단들로부터 정부의 방역대책을 부정하려는 시도로 음모론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한국사회는 이성을 잃지 않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음모론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

팬데믹 상황에서 대두된 음모론의 내용과 범위도 넓어져가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방역대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단계에서 출발해 코로나19의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식으로 확대되다가 이제는 ‘코로나19는 없다. 단지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겁주고 집에 가두려는 것이다’라는 단계에 까지 이른다.

최근 일본의 인터넷 글과 이에 따른 댓글에서 이런 유형의 음모론이 꽤 폭넓게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모습이 나타나 흥미를 끈다. 음모론을 비판하는 댓글에 오히려 ‘네가 집 안에만 있어서 정부의 계략을 모르는 것’이라는 반박이 따르기도 한다.

백신이 사정 급한 국가들에서 긴급승인을 통해 일부 보급되고 접종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백신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이 또 음모론으로 발전한다. 일단은 충분한 기간과 임상사례를 확보하지 못한 백신 보급에 따른 불안감과 또 실제 나타나는 부작용 사례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빌&멀린다 재단을 통해 20년간 전염병과 백신연구를 지원해온 빌 게이츠를 보며 그가 전염병을 퍼트렸다거나 백신에 마이크로칩을 넣어 전 인류를 감시하려 한다는 등의 주장에 이르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현대과학에 대한 불신을 보이면서도 현대과학의 힘을 한없이 크게 평가하는 모순된 모습이다. 아마도 다른 누구도 아닌 빌 게이츠여서 이런 종류의 음모론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불안한 대중은 음모론에 쉽게 휩쓸린다. 정부 대책이 신뢰를 잃으면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마련이고 그럴수록 불안감은 더 증폭되어간다.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 정부 지도자들은 전염병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더불어 대중들의 반응에만 신경 쓰느라 초기 방역에 실패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앞선 결과다.

뭐 전문가들이라고 모두가 처음부터 제대로 상황 진단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방역 전문가에게 사태수습을 위한 지휘권을 넘겼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이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어지간해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 불행이었다.

한국 정부의 방역이 성공적이라는 세계적 평가를 받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좌고우면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전문가에게 지휘권을 넘겨주고 조직적으로 뒷받침까지 해준 것은 각국 관련분야 종사자들이 꽤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최근 나오는 음모론에는 팬데믹 상황에 따른 두려움에 더해 우왕좌왕하는 각국 정부에 대한 불신, 상황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위기감과 불만 등이 뒤엉켜있다. 엊그제 본 일본 네티즌들의 논쟁 속에는 이런 음모론의 바탕이 잘 드러나 보였다.

아예 ‘코로나19는 없다’거나 ‘코로나19는 일종의 감기일 뿐’이라는 원천적 부정이 있는가 하면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별거 아닌 걸로 겁주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진단부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마스크도 쓸 필요가 없다며 화를 낸다.

음모론은 종종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기르는 텃밭이 되기도 하지만 집단화한 음모론은 사회적 위기를 확대시킬 수도 있다. 팬데믹 상황이 끝나면 사라질 테지만 완전 종식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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