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관피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6대 금융협회장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이 자리들을 고위 관료 출신들이 ‘싹쓸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관료 출신이다.
이에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연맹은 최근 ‘금융협회장 인선, 낙하산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 단체는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차기 회장 후보군 10명의 이력을 분석하며, "낙하산 후보들은 즉시 사퇴를 선언하고, 금융협회장에는 금융 전문성과 소비자 중심 사고를 하는 전문가가 선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피아 논란에 대해 후보자들 역시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손보협회 차기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돼온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이 후보직을 고사했다.
진 전 원장의 고사로 손보협회장 인선은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강영구 메리츠화재 사장, 유관우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성진 전 조달청장 등 4파전 양상으로 변했다. 그러나 유력 후보가 빠지면서 손보협회 차기 회장 선출이 일정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은행연합회장과 생보협회장 인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후보직을 고사하는 인사가 더 나올 경우, 주요 금융협회 차기 회장 인선이 잇달아 차질을 빚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과연 관피아 논란의 본질은 뭘까? 협회와 금융업계가 관출신 협회장을 원하는 이유는 고위 관직 출신 회장일수록 규제 당국과 더욱 든든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손보험 개편, IFRS17 도입 등 민감한 현안과 마주하고 있는 손보업계로서는 관료 출신 인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절실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금융지원, 신용대출 규제, 사모펀드 부실 사태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은행권 역시 금융당국을 상대로 업계의 이해를 대변할 강력한 전관이 필요하다. 은행연합회 차기 회장후보군으로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 장관급 인사들이 물망에 올라 있는 이유다. 이 정도의 거물급이 아니라면? 과연 규제당국과 민감한 현안을 놓고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절대적 규제산업에 속한 금융사들이 금융감독 당국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데 아직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한계의 단면은 최근 라임펀드 사태 관련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한 증권사 전현직 CEO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 무렵 제재심에 출석하기 위해 금감원에 도착한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일단 "억울한 것 없습니다"라고 했다. '직무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통보받은 마당에 전혀 억울한 마음이 안들 수 있을까. 현직 증권사 대표가 중징계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도 일단은 금융당국에게 "억울한 것 없다"는 정중한 자세부터 취한 후에야 소명에 나서는게 일종의 '예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며 감독당국의 처분을 놓고 다툼을 벌여야 할 상황에서 조차 금융사가 일단 수그리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면, 이외 다른 현안을 놓고 금융당국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리 없다. 힘있는 관피아 출신 협회장이 절실할 만도 하다.
'금융감독서비스'란 말이 있다. '금융감독'과 '서비스'라는 단어가 이어지니 좀 상충적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05년 금융감독원장 시절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말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행정편의 위주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의 감독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려는 노력". 그가 이 상충적 단어를 직원들에게 강조한지 15년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 수평적 위치에서 서비스 정신으로 금융감독을 하며 금융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15년이 지난 지금 금융사들이 '관피아'를 이토록 절실히 필요로 할까. 설령 관피아가 차기 회장으로 온다해도 금융당국과의 소통에 있어 민간전문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더 클지 모른다.
김호성 금융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