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라는 묘약
'설마'라는 묘약
  • 홍승희
  • 승인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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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단골메뉴로 지적된다. 하지만 뒤따라 터지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늘 별다른 개선효과는 없는 듯하다. 올 추석연휴를 강타한 태풍 ‘매미’를 뒤따라 나오는 지적 또한 여느 대형 사건 때나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생겨날 만큼 우리 사회는 늘 ‘설마...’하다 일을 키운다. 관청은 관청대로, 개개인은 또 그들대로.

관청의 무사안일을 비판하는 국민 개개인들 역시 그런 사회문화 풍토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번 태풍의 경우 그 위력이 역대 어느 태풍보다 강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보된 것이었지만 그런 태풍 속을 뚫고 무모하게 승용차를 몰고, 거센 물살을 헤치며 길을 걷고, 해안가에서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사례들이 많았다. 굳이 이번 태풍 매미가 아니어도 폭풍경보가 내려진 바다의 섬에서 낚시질하다, 혹은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지역에서 등산을 하다 조난당하는 사고는 흔한 게 돼버렸다. 누가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설마’하는 태도는 굳이 이번 태풍과 같은 큰 사건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개개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꼼꼼하게 사전 점검하고 대비하는 데 무심한 우리네 일상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새삼스럽게 뭘...”하는 식으로 별 생각없이 지내다 일이 터지고 나면 누군가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나서는 유아적 습성이 너무 자주 나타난다.

금융기관의 각종 부실사건들도 크게 보면 그같은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금융기관이야말로 안전제일주의를 표방한 듯 매우 보수적인 운용을 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막상 금융사고가 터지고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경영자나 노조나 서로 주인이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일단 사고가 터지고 나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들을 보면 과연 주인의식이 있긴 한건지 의심스럽다.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모두 노예근성에 쩌들어 있는게 아닌가 싶지만 개개인의 일상에까지 그런 무심함, 무책임함이 만연돼 있다보니 그렇게 뾰족하게 갉아대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닌성 싶기도 하다.

개별 대출 부실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돼 올 상반기 한국경제를 뒤흔들었던 가계부채 폭증은 분명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신용사회로 나아간 외국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그렇게 여겼기에 안전판도 마련하지 않고 마구 폭주하다 유례없이 큰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이제 이쯤에서 함께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우리 사회의 이같은 안전불감증은 언제쯤 치유될까. 과연 치유될 수는 있는 걸까. 왜 우리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 유독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갖고 있을까.

대체로는 불안이 큰 사회, 안전을 일상적으로 위협당하는 사회일수록 안전의식은 희박해 보인다. 전쟁 후 지뢰밭 아닌 땅을 찾기 힘든 나라의 아이들은 지뢰가 매설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공터에서 겁없이 공을 차고 논다. 어차피 위험은 늘 가까이 있는 것이다보니 회피의 방법이 없는 탓일 것이다.

한국 땅에서도 마찬가지다. 놀이터도 변변히 없는 도시의 뒷골목 아이들은 차가 다니는 골목길에서 신경쓰지 않고 뛰어 논다. 늘 차와 뒤섞여 노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탓도 있고 또 별달리 놀만한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어른들 역시 그런 심리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닌성 싶다. 늘 바쁘게 성과를 쫓다보니 과정을 건너뛰어 바라보는 것이 익숙해진 까닭이 더 커 보인다. 마치 하늘의 별만 쫓아 걷다보니 맨홀 구멍에 빠지는 꼴이다.

성과에 너무 급급한 사회문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치유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태풍 피해만 몇조원에 이른다는 추산들이 나오듯 일단 사고가 터지고 나면 안전판을 구축하며 차근차근 다져나간 경우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실적만 쑥쑥 자라니 그것만 바라보고 너나없이 과정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함정에 빠지고 덫에 걸리게 되더라도 그 전까지 우리에겐 ‘설마’라는 만능 진통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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