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파이터' 시대 끝나나···이주열 "물가안정목표제 대안 찾겠다"
'인플레 파이터' 시대 끝나나···이주열 "물가안정목표제 대안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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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중앙은행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전통적인 '인플레 파이터(물가 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 역할을 벗어 던지고 저물가·저성장·저금리가 새로운 기준이 된 '뉴 노멀(New Normal)'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압력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현행 물가안정목표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해 활용하겠다"며 "물가안정목표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통화정책 체계도 국제 논의를 참조해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은 창립 70주년 다큐멘터리에서 금리 조절을 통한 전통적 통화정책, 물가 목표를 정해놓고 관리하는 제도 등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 저금리·저물가 환경에서 효과가 있는지 의심했던 이 총재다. 금융권에서는 정통 한은맨인 이 총재가 중앙은행의 기본 목표인 물가 안정에 충실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란, 중앙은행이 중장기 물가상승률 목표(2%)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게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정책이다. 원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수요감소와 경기부진으로 세계 경제가 저물가, 저성장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통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돈을 풀면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는 자연스럽게 오르게 돼 있다. 하지만 올해 통화정책만 봐도 이 이론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은은 올해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기준금리를 0.75%p 인하해 연 0.50%, 역대 최저로 운영하고 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무제한 매입 등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까지 시행하며 유동성 공급을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1.5%로 1%대 중반을 기록하다가 5월 -0.3%까지 되레 추락했다. 지난해 9월(-0.4%)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데 이어 8개월 만에 두 번째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 총재는 "현재까지 물가안정목표제를 대체할 정책체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만 무성한 가운데 구체적 해법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마땅한 대안이 없다 보니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현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 곡선 관리 등 다양한 수단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이 단순한 경기침체를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의 확산이 진정되더라도 경제주체와 경제 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 총재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가계와 기업은 대규모 감염병이나 경제위기를 겪은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빚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특히 위기상황에서 대규모 해고, 매출 급감을 경험할 경우 극단적 위험회피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세이버'가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경제주체의 재무 건전성은 개선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와 투자의 회복이 더 더뎌지고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내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 등 공급측 물가 하락 요인의 영향이 줄고 경기는 완만하지만 개선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이렇게 보면 물가 상승률이 내년에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품·서비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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