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 산은 ESG채권, 사용내역 외부 검증 없어 'ESG워싱' 우려
2.4조 산은 ESG채권, 사용내역 외부 검증 없어 'ESG워싱' 우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투자자 안내서', 세부 내용 없어 저금리 자금 조달 창구 전락 가능
코로나 사태로 금융권 ESG채권 발행 확대···내년부터 외부기관 감사
산업은행. (사진=서울파이낸스DB)
산업은행.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2조4000억원 규모의 산업은행 ESG채권 사용내역을 담은 '투자자 안내문'이 외부기관의 확인을 받지 않은 채 공시되고 있어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후 보고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사가 이익을 위해 실행한 대출 등 자금지원도 ESG채권에 편입되는 이른바 'ESG워싱'이 나타날 수 있다.

산업은행과 한국거래소는 내년부터 발행되는 투자자 안내문에 대해서는 외부기관의 감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채권 종합정보포털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발행한 ESG채권은 23일 현재 8종 2조4000억원 규모다. 6종은 사회적채권으로 1조700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지속가능채권과 녹색채권은 각각 4000억원, 3000억원이 발행됐다.

ESG채권은 사회가치 창출 사업(사회적채권)이나 친환경 프로젝트 투자(녹색채권), 지배구조(지속가능채권) 등 공공의 이익을 강조한 사업에 사용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목적이 분명하고, 장기적인 수익률도 좋은 편이라 금융권이나 기업들이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발행하는 채권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International Capital Market Association)에서 발행한 원칙과 가이드라인에 부합해야 ESG채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금의 사용처도 제한된다.

산업은행의 '사회적채권 관리체계'를 보면 일자리창출 분야의 경우 △최근 1년간 일자리 증가율 5% 이상 증가한 기업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선정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세제상 고용확대기업 등에 채권 발행자금을 배분할 수 있다. 이 외 창업 7년 이내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 지방소재·이전 기업에 자금이 지원된다.

특히 '채권 발행일 기준 과거 1년 이내 기표된 지원대상 기업'에 대해서도 지원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출한 지 1년이 안된 기업이라면 ESG 채권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ESG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목적대로 쓰이고 있는지 외부 기관의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산업은행이 기업에 배분한 자금은 '투자자 안내문'을 통해 공시된다. 공시 내용은 사용 목적과 전체 사용 규모, 자금 집행에 따른 전체 실적 정도다.

2019년 5월 13일 내놓은 지속가능채권 투자자 안내문을 보면 3100억원을 88개 기업에 지원했고, 2018년 고용인원(2만2119명)이 2017년말(1만9533명) 대비 2586명(13%) 증가한 것으로 돼있다.

해당 ESG채권은 투자자 안내문이 작성된 당일 4000억원 규모로 발행됐다. 채권 발행 전 1년 이내에 산업은행이 대출해 준 기업들을 취합해 배분하고 공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부기관의 확인 없이 보고서가 작성됐기 때문에 지원받은 88개 기업 중에는 일자리창출 목적과 무관하게 대출이 이뤄진 기업이 있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산업은행이 대출해 준 여러 기업 중 고용이 5% 이상 늘어난 기업만 취합했더라도 전혀 알 수 없다.

이 경우 산업은행은 일상적인 대출 영업을 해 놓고도 ESG채권을 발행해 저금리 자금을 조달한 효과를 얻게 된다. 쉽게 말하면 다른 곳에 돈을 쓰고 ESG채권으로 채워넣은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12월 9일 공시한 사회적채권 '투자자 안내문'에서는 2019년 3월~9월까지 일자리창출(고용확대) 상품으로 신규 지원한 일자리창출 중소·중견기업에 4000억원이 지원됐다.

채권 목적에 부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이 지원받은 자금을 제대로 활용했는지는 확인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써야 하는 자금을 기업이 퇴직금 지급에 썼는지, 부동산 구입자금으로 사용했는지 자금을 지원한 산업은행도 모른다.

실적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산업은행이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과 전혀 관계없어도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ESG채권 관련 전문가는 "ICMA의 원칙에 따르면 사후 보고 리포트는 ESG 채권이 할당된 프로젝트들의 실행 내역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치들을 이용해서 어떤 결과가 도출됐는지 보고하도록 돼 있다"며 "지금은 성과를 평가하는 외부기관이 없어 스스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지적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내년 공시하게 될 투자자 안내서는 외부기관의 감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현행 공시 내용에서 미흡했던 부분들도 보완해서 공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소상공인·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며 ESG 채권 발행을 확대하고 있다.

2018년 1조1500억원 수준이었던 발행액은 2019년 2조9900억원 수준으로 2.6배 늘었고, 올해는 6개월만에 2조800억원이 발행됐다. 빠른 조치가 없다면 목적을 잃은 ESG채권이 다수 발행될 수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 2월 15일부터 ESG채권을 발행할 때 외부기관에서 발행 목적 등에 대한 감사를 받은 뒤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며 "투자자 안내서가 1년마다 보고되는만큼 내년부터는 외부기관이 자금 사용내역까지 확인한 뒤 공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ICMA 원칙에 따라 외부기관이 사전에 관리체계에 대해 확인을 했고, 그에 따라 일자리 창출 등 이미 성과를 낸 회사에 자금을 먼저 지원한 뒤 ESG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 분배하고 있다"며 "자금 수요처가 많은데다 금액이나 시점이 다양해 이 같은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돈에 꼬리표가 달리지 않아 지원한 자금의 사용을 확인할 수 없는 건 맞지만 해당 기업이 약속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해당 대출에 대해 상환조치 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외부기관의 사후 확인도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