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팬데믹, 패닉 그리고 홍익인간
[홍승희 칼럼] 팬데믹, 패닉 그리고 홍익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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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고 있다. 각국 정부가 적극적 대응으로 나선 이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던 사재기와 같은 대중적 패닉현상은 다소 수그러드는 듯하다. 하지만 사재기 대신 나타나는 패닉현상은 오히려 더 질이 나쁜 인종차별 등으로 번져가는 게 아닌가 싶어 포스트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중적 패닉현상보다 더 심각한 것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보이는 행태들이다. 국경봉쇄와 같은 배타적 대응도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며 올해 전세계 경제 전망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보다 더 염려스러운 현상은 자국민들로부터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타국에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등으로 향후 국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발언과 행동들이 잇달아 나오는가 하면 앞으로 이런 움직임들이 수그러들기 보다는 더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에 전염확산의 책임을 물으려는 행태는 지금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자국 내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의 증가 추세에 예민해진 트럼프 행정부의 히스테리로 볼 수도 있지만 중국에 책임을 물으려는 국가가 미국만은 아니다. 이미 인도는 중국에 엄청난 액수의 피해보상 요구를 공식화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정부 차원의 책임추궁이 문제가 아니라 시민 개인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유럽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조짐을 보인다. 당장 전염확산에 대한 책임추궁까지는 아니어도 중국 정부가 유럽에 판매한 방역물품들의 품질미비를 문제 삼아 클레임을 제기하려는 나라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결국 유럽의 일반 시민들에게는 전염병을 확산시키고 의료장비 장사를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그 의료장비들이 불량품이라는 데 따른 분노를 키우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발 전염병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던 대중들로 하여금 아시아인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들이 유러피언들의 국적을 쉽사리 구분하기 어렵듯이 저들도 동아시아인들의 국적을 구분짓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저들의 의식 밑바탕에 깔려있던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의식이 부풀어 오르며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은 비뚤어진 심리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심리가 이미 시작된 세계 경제 침체와 맞물릴 경우 매우 걱정스러운 인종차별로 이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이는 인류가 20세기 후반 들어 간신히 끌어올린 집단지성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세계의 안정을 위협할 수도 있다.

실상은 대중들의 이런 위험한 심리적 기저를 자꾸 정치인들이 자극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각국 정부 및 정치인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이런 대중 심리를 벼랑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매우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시기다.

독일 나치가 득세한 배경에 1차 대전 이후의 과도한 전후 배상 문제로 힘겹던 당시 독일 민중들의 내재된 불만을 선동했던 세력들이 있었다는 점을 유럽인들이 아직 잊지는 않았다지만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거나 경제적 궁핍상황이 지속될 경우 언제든 대상을 달리 해서 폭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의 힘을 과신하는 트럼프나 포스트 미국을 겨냥해 새로운 패권자의 꿈에 젖은 시진핑과 같은 정치인의 욕망은 늘 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판국에 행여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세계가 우려하게 만드는 행위가 미·중 간에 슬그머니 등장하기도 한다. 루즈벨트호를 비롯한 미 해군함정 내 감염자 증가와 그로인한 태평양 방위의 빈틈이 보이자 재빨리 자국 함정을 태평양으로 전진배치하고 있는 중국의 도발적 행동은 세계적 불안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불온한 기운들이 감돌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방역 모범국으로 대두되면서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고 있다. 우리의 진단키트는 움직임이 거의 멎는 무역루트에서 새로운 수출품으로 각광받으며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방역 노하우를 한국정부는 아낌없이 각국 정부와 공유하며 그야말로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추상적으로만 배웠던 홍익인간의 의미를 현실에서 실천, 확인하게 될 날이 이런 방식으로 올 줄은 우리 누구도 몰랐던 일이다. 이야말로 역사를 살리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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