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한 백약보다 강력한 선제대응"···'한국판 양적완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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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3개월 간 매주 RP 매입···금융사 신청 자금 전액 공급
"회사채·CP 직접 매입은 곤란"···'국민적 공감대' 형성될까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이 초강력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다. 3개월간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하지 않던 전례 없는 조치다. 현재로선 다가올 위기의 강도와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들어 강도높은 선제 대응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미국 중앙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서는 등 주요국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한은도 보조를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을지로 교통 표지판에 한국은행 방향을 알리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
을지로 교통 표지판에 한국은행 방향을 알리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오는 4월부터 6월까지 일정 금리수준 아래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는 주단위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제도를 도입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금융시장 안정을 꾀하고 정부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6월 말까지 매주 화요일 정례적으로 91일 만기의 RP를 일정금리 수준에서 매입한다. 입찰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에 0.1%p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해 입찰 때마다 공고하기로 했다. 매입 한도를 사전에 정해두지 않고, 시장 수요에 맞춰 금융기관의 신청액을 전액 공급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RP 거래 대상이 되는 적격증권만 제시하면 매입 요청한 금액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의미다. 

전액공급 방식이며 한도 제약 없는 유동성 지원은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실시된 적이 없었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한 조치는 사실상의 양적완화 조치로 봐도 무방하다"면서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엄중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윤 부총재는 "금융위기를 넘어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충격보다 지금 시장 상황이 더 불안한 지는 좀 더 지나봐야 안다"면서도 "현재 한은은 최상의 경계감으로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RP 입찰 참여 금융기관에 증권사 11곳을 추가하고 RP 매매 대상증권도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발행 채권 8종을 추가했다. RP란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이다. 한은이 공개시장운영으로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통화)이 풀리는 효과가 난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김현기 금융시장국장, 윤면식 부총재, 박종석 부총재보, 이상형 통화정책국장.(사진=한국은행)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 (사진 왼쪽부터) 김현기 금융시장국장, 윤면식 부총재, 박종석 부총재보, 이상형 통화정책국장.(사진=한국은행)

다만 이번 조치로 실제 어느 정도 규모의 유동성이 추가 공급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윤 부총재는 이번을 포함해 최근에 RP 대상증권에 추가된 대상증권의 발행규모를 약 70조로 추정하고 "신청액을 전액 공급한다는 방침만 결정됐을 뿐 실제 입찰과정에서 요청액이 얼마 들어올지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발권력을 동원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직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윤 부총재는 "회사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통화정책 당국자로서 완곡하게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은은 현행법상 회사채와 CP 직접 매입은 한은법상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은법(제68조)은 공개시장에서의 매매대상 증권을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 것에 한정하고 있다. 해당 증권이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한은은 회사채와 CP가 이 두가지 조건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발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은행이 정책수행 과정에서 손실 위험을 떠안아서는 안된다는 게 한은의 기본 입장이다. 한쪽에서는 연준처럼 CP매입기구(CPFF)를 통해 단기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은은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최종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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