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CP·회사채 직매입하라고?···법적 제약·너무 큰 리스크
한은 CP·회사채 직매입하라고?···법적 제약·너무 큰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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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준은 하는데 왜 안되냐고? "정부가 보증하면 가능"
채권안정펀드에 지원···RP 매입 증권사 11곳으로 '확대'
을지로 교통 표지판에 한국은행 방향을 알리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
을지로 교통 표지판에 한국은행 방향을 알리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이 국고채 매입을 시작으로 사실상 양적완화에 나선 가운데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직매입 카드는 제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회사채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되자 일각에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라는 요구가 일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법으로 가능하지 않도록 돼 있기 때문인데,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위험한 발상이라는 방증이다. 한국은행은 국내 유일의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행정부의 일원이 아니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다급하다고 강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은은 그 대신 증권사 등 비은행기관을 대상으로 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증권사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한편, 금융당국은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시장에 개입하기로 했다.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구상이다. 한은은 이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두고 50%의 유동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23일 한은 관계자는 "최근 법규제도실에서 회사채와 CP 매입이 현행법상 가능한지 검토했으나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한은법(제68조)은 공개시장에서의 매매대상 증권을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 것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증권이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한은은 회사채와 CP가 이 두가지 조건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발권력을 행사하는 중앙은행은 정책수행 과정에서 손실위험을 떠안아서는 안된다는 기본원칙 하에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일각에서 한은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처럼 CP매입기구(CPFF)를 통해 단기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기구 설립을 통한 회사채와 CP 매입 역시 불가능하다고 최종 해석 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 연준은 정부의 지급보증 하에 CP를 매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축통화인 달러와 원화를 동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도 엄청난 무리다. 엔화가 원화보다 안정성 면에서 앞서는 데도, 일본은행 역시 이날 미국과 같은 조건하에 회사채 매입에 나섰다.

다만 한은은 채권시장의 심각성을 감안해 현재 5개사인 RP 대상 비은행기관에 통안증권 대상 증권사 및 국고채전문딜러(PD)로 선정된 증권사 최대 11곳을 추가하기로 했다. 유동성 공급 루트를 넓히기 위해서다. 또 RP 대상증권에 공기업 특수채를 추가하기로 했다. 현재 RP대상 증권은 국채, 정부보증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과 지난 19일 포함된 은행채다. 

이번 조치는 주가연계증권(ELS) 헤지거래 달러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문제로 비상이 걸린 국내 대형 증권사들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증권사가 해외 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를 운용할 때는 위험 회피(헤지)를 위해 해당 지수의 선물 매수 포지션을 취하는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유로스톡스 50 지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 등이 일제히 폭락한 탓에 추가로 증거금을 내게 된 것이다. 

아울러 증권사들이 단기자금 시장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서며 CP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우려가 나온 것도 이번 조치의 주 요인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한은은 또 증권사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증권금융 등 5개 RP 대상 비은행기관을 대상으로 RP 매입을 진행한다. 대상 기관은 한국증권금융과 삼성·미래에셋대우·NH투자·신영증권 등 총 5곳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 19일 이들 기관을 대상으로 RP 매입 테스트 입찰을 한 바 있다. 한은은 공개시장운영 차원에서 시중은행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RP 거래를 하지만, 지난 19일 비은행권을 대상으로 RP 거래 를 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채안펀드 참여 금융기관에 출자액의 50% 수준의 유동성 공급도 추진하고 있다. 2008년 한은은 채안펀드에 출자한 은행·보험사·증권사 등에 출자금의 50% 수준인 2조1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당시 한은은 해당 금융기관이 보유한 국채 등을 RP 매입하는 방식을 사용해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 될 전망이다. 

채안펀드는 채권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을 일시적으로 겪는 기업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고 국고채, 회사채의 과도한 스프레드 차이를 해소하는데 사용된다. 현재 거론 중인 채안펀드 규모는 최소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008년에 10조원 규모로 했으니 상식적으로 커지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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