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금융업 진출 '러시', 왜?
대기업 금융업 진출 '러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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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롯데-현대-유진 등…"수단아닌 목적…기존 금융권엔 자극제"
[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yushin@seoulfn.com>최근들어 재벌급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이 두드러 지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의 산업화가 상당히 진전됐던 9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재벌들이 너도 나도 금융업진출에 관심을 두던 때와 현상적으로는 유사하다. '돈벌기에는 돈놀이가 최고'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데다, 기업들의 만성적인 자금난과 초고금리로 인해 금융업은 주력인 제조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서의 필요성이 높았었다.
 
그러면,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고 있는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어떻게 봐야할까?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엔 주로 제조업의 보조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주력사업으로서의 목적 그 자체라는 지적이다. 제조, 유통업으로는 먹고사는 데 한계를 느껴 아예 메인메뉴를 금융업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세상에 '돈놀이'보다 나은 장사는 없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금융업 진출에 가장 활발한 곳은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은 유통업의 대명사와 같다.
그런데 요즘 금융업을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롯데그룹의 금융업 진출은 2002년 동양카드(현 롯데카드) 인수가 그 시발점이다. 이때 롯데그룹의 금융업 기반이 마련됐다.
신 부회장의 금융업 확대 구상은 그룹 내 정책본부장을 맡은 2004년부터 더 구체화했다. 그룹 내에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증권업 진출과 보험사 인수를 추진했다. LIG생명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랜드마크자산운용 매각 입찰에 참여하는 등 금융업 인수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마침내 지난 7일 대한화재를 인수했다. 그러나, 롯데의 금융업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금융업에 관심이 많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81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의 노무라 증권 런던지점이었다. 그는 평소 서비스 산업이야말로 돈이 되는 산업이며, 계기가 되면 언제라도 금융업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그같은 평소 생각이 점차 결실을 맺어 가고 있는 셈이다.

금융회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건설이 주력인 유진그룹이 서울증권을 인수했다.
유진은 CI변경 작업을 거쳐 1월부터 '증권업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농심·한국야쿠르트 등 식음료 회사도 각각 농심캐피탈과 플러스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한 한화는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이 대한생명에서 나온다. 금융 부문이 한화 계열사 전체 매출액 21조원 중에서 12조3000억원, 순이익은 1조1000억원 가운데 4200억원을 차지한다. 어찌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진 형국이다.  

한편, 현대캐피탈·현대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는 추가로 국내는 물론 미국·중국 등 해외 금융업체 인수를 적극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는 "현대차 그룹이 최근 매물로 떠오른 대형 증권사 인수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효성그룹도 올 6월 미국 론스타로부터 스타리스를 3023억원에 매입했다. 효성의 금융 사업 비중은 20% 이상으로 커졌다. 

이런 가운데, 이들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은 일종의 기득권을 누려온 기존 금융권에게는 위협요인이다. 유통회사는 엄청난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강력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에 편입된 대한화재는 당장 연간 500억원 이상의 롯데 계열사 일반보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백화점·할인점·신용카드사 등을 활용하면 손보업계 5위권 도약은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다. 대한화재의 지난해 지난해 점유율은 2.7%. 업계 최하위권이다..
사실, 삼성생명(옛 동방생명)이나 삼성화재(옛 안국화재)가 국내 간판급 생손보사로 성장한 배경에는 삼성그룹 차원의 밀어주기가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80년대말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생명보험업 진출이 붐을 이룬 적이 있다.
정부가 보험업을 개방하면서 중견기업들에게 내국사니 합작사니하는 명목으로 보험업 라이센스를 남발했던 것인데, 이렇게 보험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국내 생보사 숫자가 무려 33개사로 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신한, 동부, 동양, 금호생명 정도다.
당시 생보업 진출의 기본 조건이 자본금 100억원이었지만, 라이센스를 따내는데 또 그만한 돈이 들어 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서,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일부 중견기업은 당시 생보업에 손을 댓다가 모기업까지 망가진 사례도 적지 않다. 
결코, 멀지않은 과거에 벌어졌던 우리 금융산업의 현실인 동시에 '반면교사'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 중심으로 일고 있는 금융업 진출은 경쟁력면에서는 적어도 그 당시와 견줄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들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 이유는 산업구조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제조업 분야는 물론, 유통·건설 등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 대기업들로선 신수종 사업 발굴이 절실해졌고, 그 타깃이 금융업이라는 지적이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아시아 금융시장이 급성장하고 제조에서 금융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선진국형 산업 구조로 바뀌면서, 대기업의 금융업 확대 전략은 이런 추세를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종의 트렌드인 셈이다.
일단,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기존 금융권에 경쟁력 제고에 대한 자극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금융업에 맛을 들여 본체를 소홀히 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은 남는 대목이다. 
 
박민규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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