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아카데미상의 위력
[홍승희 칼럼] 아카데미상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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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칸느영화제를 비롯한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가운데서도 굵직한 4개 부문 상을 수상하자마자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권에서 봉준호 마케팅이 등장했다. 특히 봉준호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자유한국당-비록 당명은 바꿨다지만-에서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는 말 한마디 없이 봉준호 마케팅에 나서는 것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너무 염치없는 짓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아마도 봉감독이 대구 출신인지 대구 지역 자유한국당 출마예정자들이 앞다투어 봉준호를 살아있는 전설로 만들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 차원의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 거리를 만드는 것이야 그렇다 하고 생가터 복원이니 기념관 건립이니 하는 얘기들을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쏟아내는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야 관광 마케팅이나 동향인으로서의 자부심 고취 차원에서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정치 공약으로 삼을 주제는 아니지 않나 싶다. 봉감독 본인이 수용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로서는 꽤 민망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정치권의 표변함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으니 그렇다 치고 영화를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서 한국인 모두가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분위기인데 한편에서는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두고 색다른 시각으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무언가 비판을 하지 않으면 반지성이라는 강박을 가진 이들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생중계가 있던 날 저녁에 우연히 영화학을 전공한 이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안할 수는 없다며 모인 자리에 영화를 잘 모르는 필자 역시 그저 축하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동참했었다.

세계 언론들은 봉감독의 수상을 아카데미의 역사를 바꿨다느니, 세계 영화사의 흐름을 바꿨다느니 하는 극찬이 많았지만 한국에서 영화와 얽혀 일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그 흥분이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기에 그들의 조금은 들뜬 분위기를 보는 것도 기꺼웠다. 한국 영화사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을 마련한 봉감독에게 보낼 축하의 마음을 그저 술자리에서 흘려보내는 것일지라도.

수상 사실 자체로도 기뻐했지만 특히 봉 감독이 수상식에서 한 말들이 또 유쾌한 안줏거리가 되기도 했다. 세계인의 공통적 감성에 다가가면서도 아시아인 특유의 겸손함까지 갖춘 그의 수상소감은 또 미국인의 유머코드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당장 봉준호 혹은 그의 영화를 글로 써야 하는 이들이다 보니 그의 영화들에 가해지는 비평들에도 신경을 쓴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이미 어딘지 실린 글에서 기생충 영화가 가난한 이들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했다며 그에 동의하고 말고를 두고 또 말이 오갔다.

그런 시각이 너무 프레임에 갇힌 사고라는 반대의견이 그날 그 자리의 대세이기는 했으나 비판하는 이들의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지를 두고 고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온 예시로 루쉰의 ‘아Q 정전’이 등장했다.

아Q 정전은 가난한 자들이 품고 있는 비겁하고 비열한 면모를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감히 누가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꿈꾸었던 루쉰을 두고 가난한 자를 희화화했다고 말하겠는가.

아마도 기생충 영화가 가난한 자들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은 가난한 자를 함께 걸어갈 시대적 동반자가 아니라 단지 온정주의적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가난은 동정하거나 미화할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가 함께 극복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로 인식할 때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지고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평등해지지 않을까.

가난이 가난한 자의 정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라면 그 이전에 가난에 먹혀가는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이어야 할 듯하다.

아무튼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한국의 국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한국에서 만든 영화, 한국어로 당당히 밝힌 수상소감은 BTS의 한국어 노래가 세상을 울리는 것과 더불어 한국문화의 힘을 드러내는 일이지만 국력이 약했다면 그마저도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더욱 기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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