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하 120m KURT에서 10만년 초석 닦는다
[르포] 지하 120m KURT에서 10만년 초석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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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이 KURT 내부에 실험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KURT 내부에 실험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원자력연구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19차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던 지난 5일. 대전 원자력연구원 뒷산에서는 먼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원 본관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지하연구처분시설(KURT)'은 얼핏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문명 멸망 이후의 세상) 세계관에 등장하는 동굴 피난처처럼 생겼다.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한 켠에 놓인 경수로용 핵연료집합체 한 다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방사성 물질 사용은 금지된다. 집합체 내부에 우라늄은 없었지만 KURT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킬 목적으로는 충분했다. 지표면에서 120m 떨어진 지하에서는 10만년짜리 숙제를 풀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KURT는 순수 연구 목적의 지하시설로,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걸음마 단계 연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1단계(2003~2006년)와 2단계(2012~2014년)에 걸쳐 건설됐으며, 약 100억원이 투입됐다. 중생대 화강암에 세워진 KURT의 전체 길이는 551m, 지표로부터 최고 깊이는 약 120m다. 확장 공사 이후인 2015년부터 8개의 연구모듈에서 관련 연구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연구는 크게 지하암반의 천연방벽 성능과 처분용기‧완충재 등 공학적방벽의 격리 성능을 검증하는 시험 두 가지로 나뉜다. 

지하 120m 부근. (사진=원자력연구원)
사진=원자력연구원

이날 연구시설에서 만난 조동건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 책임연구원은 "KURT는 실규모 실증이 가능한 규모의 '지하연구시설(URL)'은 아니지만 처분개념 및 기술 개발과 평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이라면서 "향후 건설될 URL의 선행 경험을 이곳에서 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URL이란 폐연료봉의 처분방법 개발과 안전성 여부를 실제 처분환경과 동일한 조건에서 실증하기 위한 시설이다. 처분부지가 아닌 별개 장소에 건설되는 연구용과 최종 처분장에 만드는 인허가용으로 구분된다. 처분 상용화를 위해서는 URL을 비롯해 부지선정과 안정성평가 기준, 처분시스템 등 4가지가 필요하다.

KURT에서는 실증 연구 전 준비 작업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1960~1970년대 기초연구를 시작한 외국의 경우 현재 30년 이상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조 책임연구원은 "규모가 작아 실제 500m 깊이의 처분 환경과는 차이가 있어 KURT 데이터의 활용 범위는 제한적"이라며 "성능평가모델, 용기부식모델, 핵종이동모델 등 추후 인허가에 사용될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연구용 URL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파가 기승을 부렸던 시설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따뜻했다.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각종 실험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암벽 혹은 동굴 바닥에 시추공을 뚫어 사용후핵연료 처분용기의 부식 여부를 살펴보거나 지하수 흐름을 추적하는 실험 등을 실시한다. KURT에서는 방사성 물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폐연료봉 대체품으로 일정한 온도의 히터(난방장치의 일종)를, 방사성 핵종으로는 지하수에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소금물과 형광물질을 이용한다. 

'싱글홀(단일 시추공) 히터 시험'은 암벽에 구멍을 뚫고 히터를 넣어 주위 암반 변화 등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해당 시험은 현재 종료된 상태다. 사용후핵연료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붕괴열이 처분용기와 핵연료 사이 완충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려는 목적도 있다. 향후 처분장이 만들어지면 일정한 간격에 맞춰 깊이 10m의 '처분공'을 뚫고 처분용기를 넣는다. 높이 5m의 기둥형 용기 내부에는 폐연료봉과 함께 지하수 침투를 막기 위한 완충재를 넣는다. 향후 문제가 없다면 국내에서 처분용기 소재로는 구리, 완충재로는 벤토나이트가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붕괴열 발생시 처분용기와 완충재 사이 온도는 100~120℃다. 조 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 지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은 열이기 때문에 완충재의 열적 특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벤토나이트가 100℃ 이상이 되면 광물학적으로 차수 능력이 저하된다. 해당 시험을 진행할 당시 100℃를 기준으로 변화를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사진=원자력연구원)
플라스틱 구조물 밑에 처분용기 모형이 묻혀있다. (사진=원자력연구원)

동굴 내 가장 습하게 느껴지는 지점 바닥에는 약 1m 크기의 구멍이 3개 뚫려있었다. 이중 한 곳에는 높이 1m‧지름 80cm‧무게 3t 가량의 처분용기 모형이 묻혀있다. 실제 처분용기 대비 3분의 1 크기로, 사용후핵연료가 들어갈 자리인 용기 가운데에 히터를 넣고 외곽을 벤토나이트 완충재로 감싼 형태다. 용기 외부에는 온도, 압력 등을 측정하기 위해 200개의 센서가 부착됐다. 향후 비어있는 2개 공간에도 처분용기 모형을 넣고 데이터를 모은다는 계획이다. 

사진=김혜경 기자
사진=김혜경 기자

KURT는 교육시설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조 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사업은 국민 이해 전제가 우선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직접 살펴보고 안전하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면서 "2006년 완공 이후부터 외부에 공개하고 있는데 연간 1100명이 방문하고 있다. 시설 견학 후에 주민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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