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대한민국 최대 화두 '90년대 생'
[홍승희 칼럼] 대한민국 최대 화두 '90년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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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0대에 진입하기 시작한 90년대 생들이 사회학에서도, 정치권에서도, 그리고 출판시장에서도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이미 이들을 보고, 분석하는 서적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아마도 유통이나 소비재 생산분야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기존 세대와 같은 프레임으로 해석 가능하지 않은 이들 세대의 정치적 잣대에 다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제까지 한국사회가 ‘민주화’라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추상적인 사회적 지향목표를 제시하며 여론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면 현재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른 90년대 생은 기존 프레임으로 해석하기에는 다른 선택들을 종종 한다.

아마도 지난 조국 사태 당시 젊은 층이 보여줬던 선택에 기존 정치권은 다소 어리둥절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부랴부랴 이들 세대를 알기 위한 노력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2019년은 우리 사회가 이들 세대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해이기도 했다.

이들 세대에 대해 80년대 생인 한 회사의 중견간부는 자신의 뒤를 치받고 있는 90년대 생들에 대해 우선 그들이 가진 피해의식을 얘기한다. 그들은 ‘공정함’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며 자신들은 불공정한 사회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 사회적 평가 못지않게 가부장적 문화, 결혼한 남녀간의 각종 분담 문제 등에도 매우 예민하다. 특히 여성들은 시댁 우선 문화에 그 이전 세대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온 몸으로 아파한다.

그들의 부모세대는 흔히 586세대라고 파악되고 있다. 그 부모세대가 민주화에 몸을 던졌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생들에게는 그들이 이미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이루며 ‘공정한 사회’ 구축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이들 세대의 변화된 인식은 이들 세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나간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긴요하다. 2000년대 생들은 이런 90년대 생의 변화 위해 변화를 더 할 것이므로.

최근 나온 한 책에서는 이런 90년대 생의 사고를 이룰 사회적 기반에 대해 색다른 해석이 나와 관심을 끈다.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 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책이 그것이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90년대 생을 단일한 하나의 세대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20대는 단일한 세대가 아니라, 10%의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90%로 이루어진 초격차 세대”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지난 조국대전에서 이들이 ‘중산층의 분노’와 ‘다수의 냉소’로 양분된 반응을 보였고 이는 그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양적`질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들 세대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생활세계에 놓여있으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주장과 같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유의미하지만 이런 불평등구조나 사회 계층간의 분화현상은 이들 세대에만 유독 주어진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양극화의 문제로 고민해왔지만 단지 사회적 해법 마련에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지난 80년 무렵 부유층 여성들이 만나는 자리에 우연히 동석했던 필자는 당시 꽤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당시 실권자로 급부상한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가 한 여성잡지를 통해 사회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직후였는데 당시 그 부유층 여성들은 이순자씨의 사진을 보며 그 집 장롱은 어디 제 뭐고 책상은 어디 제 뭐고 브라우스는 또 어디 제 뭐라고 읽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치를 알아보는 것은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하는 이들이었고 이들의 질투야말로 이후 전두환 정권의 아킬레스 건 중 하나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제는 이런 계급, 계층의 문제가 ‘세습’되는 데 따른 나머지 90%의 불안과 분노가 그 어느 때보다 공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당장 ‘번듯한 일자리’는 오직 10%에게만 돌아가고 ‘정상적 가족’을 꾸리는 일은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됐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들 세대의 분노가 현재는 풀 길을 찾아 헤매는 단계이지만 더 이상 방치하면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사회적 무관심과 개인적 무기력증으로 고착화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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