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파행'···재검토위 '검증' 보다 '증설'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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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안 재검토 공론화하랬더니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
'산업부 자문기구' 불과···"지위격상 등 제도 개선 필요"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논의는 위원회에서 했으니 따로 답변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답변은 보내야죠. 어느 기관에서 회신 하느냐가 문제네요."

지난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회의에서는 시민단체가 발송한 공문을 둘러싼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검토위의 답변을 요구했고 누가 회신을 담당하느냐가 문제가 됐다. 이는 공론화위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독립성과 권한이 보장돼야 하지만 제도적 한계로 산업부 자문기구에 불과한 상황이다. 공론화 시작 전 위원회 지위부터 격상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졸속으로 처리된 관리정책 권고안을 바로잡기 위해 공론화위가 다시 출범했지만 지난 5월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 시민단체·지역 '30km' vs 원자력계 '5km'

지난달 21일 논란 끝에 경주에서는 전국 최초로 지역실행기구가 출범했다. 각 원전 지역에 설치될 지역실행기구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 여부 등을 논의하게 된다. 중수로 ‘캔두(CANDU)’ 모델인 월성원전은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습식 저장고에서 5년 이상 식힌 후 육지로 꺼내 건식 저장하고 있다.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는 2월 20일까지 11주간 지역 의견을 모은다. 3주 이내 설명회 3회, 5주 이내 토론회, 7주 이내 공론화 프로그램 실시 등을 통해 늦어도 2월 내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앞서 재검토위준비단에서 합의했던 내용과는 다르게 전국 공론화보다 지역 공론화가 먼저 이뤄졌다는 점과 ‘원전 반경 5km 이내’라는 주민의견 수렴 범위가 재차 언급됐다는 점이다. 준비단에서 권고한 재공론화 순서는 1단계 의견수렴 과정인 전국공론화를 마무리한 후 2단계 지역공론화를 진행하도록 설계됐다. 지역 주민의 불이익 방지 등의 목적으로 1단계와 2단계를 병행하거나 역행할 수 없다. 

산업부와 재검토위가 관련 내용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원전 소재지 자치단체장에게 맡김으로써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울산지역과 시민·환경단체에서는 공론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5차 재검토위 회의에서도 경주실행기구 관련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된 가운데 지역이 제기한 ‘원전 반경 5km 이내 경주시’라는 의견수렴범위를 두고 재검토위와 지역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실행기구 간사를 맡고있는 박영숙 경주시청 원자력정책과 팀장은 "월성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사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같은 의견수렴범위를 정했다"면서 "맥스터(건식저장시설) 건설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실행기구 구성 관련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있는데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주민들은 이들과 의견이 다르다"면서 "30년 동안 싸워온 것은 경주 시민들인데 울산이 갑자기 왜 끼어드는지 지역민들은 의문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주시 전체’와 ‘발전소 반경 5km 이내’는 서로 상충한다. 재검토위는 5km 문구를 제외한 경주시로 할 것을 제안했지만 지역 측에서는 원전 인근 거주민들의 의견에 좀 더 가중치를 둬야 한다며 5km라는 문구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거리와 관계없이 경주시 전체냐 혹은 5km로 제한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반경 5km 이내에는 양남과 양북면, 감포읍 등 3개 읍면이 포함되고, 20km 이상을 벗어나야만 경주도심 일대가 포함된다. 반면 반경 7km 이내에는 울산 북구가, 20km 내에는 동구 지역이 포함되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이내에는 울산시민의 거주지가 모두 포함되는 셈이다. 실행기구 의견수렴범위가 경주시 전체가 될 경우 울산은 방사선비상구역에 포함됨에도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에 제외된다. 반면 반경 5km 이내로 확정되면 경주도심은 포함되지 않는다. 

앞서 준비단에서는 지역의견 수렴 범위 관련 제시된 5안 가운데 원자력계 위원 3인이 지지한 3안과 지역 대표 5인·환경단체 위원 3인이 지지한 5안이 최종 유지됐다. 3안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변지역이 의견 수렴 대상이며, 원전으로부터 반경 5km 내다. 

반면 5안은 원전 소재 지역 기초지자체 행정구역 및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상충 시 원전 소재지 의견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의견 수렴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합의 이유였다. 최종 권고안에서 3안과 5안이 유지됐지만 지역 대표와 환경단체는 30km로 합의를 본 셈이다. 경주 지역실행기구에서 갑자기 5km 언급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준비단에 참여했던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환경단체와 지역 대표가 합의를 했더니 지금까지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원자력계 3인이 막판에 제기했던 의견이 5km였다"면서 "30km 방향으로 가합의까지 진행됐지만 준비단 전체 위원이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안에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준비단 종료 이후 들었던 내용 가운데 일부는 경주 시민 대상으로는 시에서, 경주시 외부 다른 지자체 의견은 중앙의 재검토위가 직접 의견을 수렴한 후 해당 의견들을 절충하는 방법을 두고 산업부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재검토위가 전문성이 있는 집단이라면 이같은 사안들부터 따져봤어야 했다. 지역실행기구 위원 수는 10명으로 정하면서 지역 공론화 범위는 실행기구에 위임한다고 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재검토위와 실행기구 간 맺은 협약에 따르면 월 1회 회의를 실시하는 등 서로 협의를 해야한다. 지역이 제출한 의견서를 토대로 협의하자는 것이지 지역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재검토위의 입장이다. 경주시로 의견수렴범위를 정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재검토위 숙의 분과 위원들과 전문가그룹 협의 후 다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 시작부터 한계는 명백···알면서도 제도 개선은 無

공론화위의 출범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6조에 의거해 위원회의 설치, 지원 등과 관련된 사항이 정해지고 구체적인 운영에 대해서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설치 및 지원에 관한 고시’에서 규정된다. 공론화위에서 도출된 권고안이 원자력진흥위원회 및 산업부에 제출되면 최종적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이 결정된다. 

문제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는 공론화위가 현행법상 산업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위원회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에 활동이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공론화 시작 전 위원회 지위 격상을 위한 제도 정비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된 바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사용후핵연료 관련 법령 정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방폐물관리법에는 공론화위 설치 여부만 언급하고 있을뿐 위원회를 어디에 둘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내용이 없다. 

김종천 법제연구원 에너지법제연구실장은 "현행법상 원자력진흥위 의결로 공론화위가 출범하지만 진흥위 산하 기관도 아니다"면서 "자문기구의 성격에 가깝기 때문에 공론화위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진흥이 목적인 기관들만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한계다.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상시키거나 산업부 외에도 규제기관을 포함시켜 범부처 성격의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 등이 숱하게 건의됐다. 

운영과 지원방안 관련 제6조의2 6항에서는 ‘산업부 장관은 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역할 수행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현재 재검토위 위원들은 지난 정부 공론화 과정에서 진행된 회의 속기록도 살펴보지 못한 상태다. 앞서 15차 회의에서는 회의 속기록 공개 여부 논의가 있었고, 지난 공론화위 속기록이 비공개이기 때문에 현재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같은 자료를 산업부가 적극 제공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 충분한 정보 제공 이뤄져야···"책임 전가식 공론화 안돼"

지난달 8일 출범한 전문가그룹 일부에서는 재검토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그룹은 사용후핵연료 관련 전문적인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구성됐으며, 기술과 정책 2개 분과로 나뉘어있다. 지난 정부에서 도출된 권고안을 재검토하기는커녕 임시저장시설 증설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 10만년 이상 격리가 필요한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고준위방폐물 영구처분장을 한반도 내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지난 1994년 정부는 일방적으로 굴업도를 방폐장 부지로 결정한 후 활성단층이 발견되자 계획을 중단하기도 했다.

전문가그룹의 한 위원은 "폐연료봉 처분 필요성을 전제로 기술 현황과 능력 등을 정부와 사업자가 먼저 제시하지 않고서는 공론화 자체를 진행할 수 없는데도 재검토위에서는 벌써부터 여론조사 항목부터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물어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제대로 된 정보 제공없이 의견을 묻는 것은 그야말로 책임 전가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현세대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종 처분장 건설과 운영까지의 시간적 여유를 감안했을 때 후세대의 판단에 충분한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이라면서 "충분한 예산 적립과 기술 개발, 경험 전수 의무를 명시화해야 하며, 오랜 시간 방치됐던 현안에 대한 반성없이는 전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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