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갈라파고스와 노마드 정신
[홍승희 칼럼] 갈라파고스와 노마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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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인은 친절하다는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런 이미지는 아마도 한국전쟁이 끝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2차 대전 이후 폐허화된 자국의 살길을 경제 재건에서 찾았던 일본은 때마침 발발한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제를 재생시키며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여 세계를 상대로 친절을 팔았다.

60년대 후반 일본을 방문했던 필자의 부친은 당시 일본인들의 친절 사례 하나를 들려준 적이 있다. 백화점에 들러 선물을 사려던 아버지가 점포를 잘못 찾았을 때 점원은 자신이 가게에서 그 물건을 갖추지 못해 미안하다며 해당 점포까지 자청해서 안내를 해주더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적 서비스 정신이 낯설기만 했던 한국인으로서는 그런 그들의 친절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듯하다. 그런 자세는 백화점 점원으로서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비쳐져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었다.

그런 일본인들의 친절한 태도는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일본의 비즈니스 능력을 빗대어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 수 있는 일본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아마도 80년대 들어 자만심으로 되살아난 게 아닌가 싶다. 이는 단순히 필자의 개인적 경험이지만 80년대 초 일본 공항에서 공항직원들의 오만한 태도를 접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일본인 개개인들은 대체로 상냥하다, 싹싹하다는 정도의 인상을 주었다. 그러던 일본인들이 올 초 도쿄에 가서는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한국의 상인들이 이미 친절을 장착하고 있는 변화에도 기인하겠으나 올 초 도쿄에서 본 일본인들에게선 생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동행한 이는 이를 보며 일본은 ‘좀비사회’ 같다고 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속철 직원들의 오만함을 접하며 일본사회가 점차 글로벌 매너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안고 돌아왔었다. 그들은 외국인들의 서투름에 조금의 친절도 보일 뜻이 없어보였고 오히려 속임수로 골탕을 먹이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태도는 실상 일본의 기업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지 의심해보게 하는 소식들을 근래 자주 듣게 된다. 일본 정부의 한국 경제공습 이후 부쩍 늘어난 소식들 중엔 일본을 경제 산업적 갈라파고스로 표현하는 글들도 적잖게 접하게 된다.

외부세계와 고립된 갈라파고스 섬의 독자적인 진화과정이 다윈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립된 문명이 종종 이에 대비되곤 한다. 글로벌 시대에 고립된 기술적 진보는 스스로를 국제 비즈니스 흐름에서 소외시키기 마련인데 현재 일본의 기업생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요즘 트럼프의 미국이 일방적 외교를 펼쳐 세계 정상들 사이에서도 뒤돌아서서 흉보는 일들이 벌어진다지만 그런 미국은 여전히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아직은 세계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입장이지만 일본의 영향력은 결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또한 미국 기업들은 정부의 방침과 별개로 여전히 세계시장에서 활개를 치지만 일본 기업들은 지난 26년간 기술적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일본 경제는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최근엔 중국 정부가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외국산 IT기기 추방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도 들린다. 소위 말하는 3-5-2작전이다.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30%, 50%, 20%씩 관청 및 공공기관에서 외국산 IT기기들을 추방하고 중국산으로 대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자국산 사용을 늘리겠다는 정책인 듯 보인다. 기술 신생국의 경우는 이런 계획이 일정 정도 효과가 있지만 이미 글로벌 경쟁에 나선 상황에서는 미래기술 영역에서 스스로의 고립을 부르는 일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한국 정부나 기업들은 그런 점에서 정반대로 치고 나가는 형세다. 세계 각국과의 잇단 FTA체결 등 활발한 통상외교의 결과물들과 더불어 기업들도 세계 기업들과의 다양한 협력관계 확대로 세계시장을 하나의 통합시장처럼 여기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과정을 보는 듯하다. 한국인의 DNA에는 이런 노마드 정신이 살아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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