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재계 '큰 어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별이 된 재계 '큰 어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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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했던 삶 대로 장례식 비공개 가족장
해외공장 설립 등 '글로벌 LG' 기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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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금성사 창립25주년을 맞아 적극적인 고객서비스를 위해 마련한 서비스카 발대식에서 서비스카에 시승해 환하게 웃고 있는 구자경 명예회장.(사진=LG그룹)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향년 94세.

구 명예회장은 평소 몸소 실천한 소신대로 마지막 길도 소탈과 겸손함을 보여줬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가족 외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으며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 바란다고 유족 측이 밝혔다"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그룹에 첫발을 들였고, 1969년 구인회 창업주가 62세 일기로 타계함에 따라 1970년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70년 대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기술입국(技術立國)'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 연구개발에 모든 역량을 쏟아 70여 개 연구소를 설립,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의 도약과 우리나라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또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여 혁신으로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일궜다.

그 결과 구 명예회장이 25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1150배 성장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구 명예회장은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지내다, 1950년 부친의 부름으로 교편을 놓고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입사 후 럭키크림 생산을 담당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직접 크림을 만들고 제품을 포장해 판매현장으로 나가기도 했다.

배달과정에서 뚜껑이이 파손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 플라스틱 크림통 뚜껑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집 뜰의 가마솥에 베이클라이트나 요소수지 등 원료를 녹이면서 실험에 열중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십 수년 공장 생활을 하며 '공장 지킴이'로 불리기도 했다. 구인회 창업주는 당시 장남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는 주위사람들에게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수 없는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며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했다.

구 명예회장이 1.5세 경영인으로 평가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년간 부친과 함께 생산 현장을 지키며 사업을 정착 시키고 성장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다.

1995년 70세가 되던 해 구 명예회장은 스스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 소탈한 삶을 보냈고,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업적은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큰 울림을 줬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타계한 장남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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