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미원vs미풍, 광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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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식품업계 달군 대상·CJ제일제당 조미료 마케팅
[타임머신] 미원vs미풍 '조미료 광고' 전쟁 
1960~1970년대 신문에 실린 미풍(위)과 미원 광고. (사진=대상)

[서울파이낸스 이주현 기자] '미원 빈 봉지 5장으로 순금반지 하나.' '미풍 빈 봉지로 고급 쉐타를.' 1970년 초 일간지에 실렸던 조미료 광고 문구다. 

1960~1970년대 한국 식품업계는 조미료 열풍이 거셌다. 1956년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미원주식회사를 거쳐 대상그룹으로 바뀜)에서 출시한 첫 국산 조미료 '미원'의 성공을 지켜본 식품업체들이 앞 다퉈 비슷한 제품을 쏟아냈다. 당연히 국내 조미료 시장에선 치열한 점유율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신문 기사를 확인해보니, 신한제분 '선미소'와 '맛나니', 원형산업 '미풍', 제일식품화성 '미성', 영생산업 '육미소', 신앙촌 '7000번 미소', 진미식품 '진미', 삼양식품 '맛그만', 제일물산 '일미', 한양산업 '미영' 등이 미원과 맛 경쟁을 펼쳤다. '조미료 전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제품도 미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 미원의 아성에 도전하는 식품업체가 나타났다. 삼성 계열사였던 CJ제일제당이 1963년 12월 원형산업을 합병하며 조미료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CJ제일제당은 원형산업이 생산해온 미풍에 '백설표'를 붙인 뒤 '신선로표' 미원과 자존심 싸움에 나섰다. 

미원과 미풍의 판촉전은 신문 광고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TV를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신문 광고가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미료 광고 경쟁은 오늘날 소비자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대상은 "영업사원들 간 경쟁 못지않게 사은품 경쟁도 치열했다. 미풍이 무채칼, 고무장갑을 사은품으로 구성한 김장세트를 출시하면, 미원은 고급 비치볼, 미원병 등을 선물로 증정하는 사은행사를 진행했고, 미풍이 고급 스웨터를 경품으로 주는 행사를 진행하면 미원은 금반지를 경품으로 내걸었다"고 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당시 미원과 미풍의 경품 응모 엽서로 인해 우체국이 큰돈을 벌었다고 알려졌을 정도다"라는 게 대상 쪽 설명이다. 대상과 CJ제일제당 설명을 종합하면, 사은품 경쟁은 사회적 문제로 번졌고, 결국 미원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물러서지 않았고, 1975년 출시한 '다시다'로 국내 조미료 시장 1위 자리를 꿰찼다. CJ제일제당 쪽은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값비싼 쇠고기로 국물을 낼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2개월 만에 생산량을 초기 20t에서 200t으로 늘릴 만큼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전파됐으며, 기존 화학 조미료와는 완전히 다른 천연 조미료를 표방해 2세대 종합조미료로서 차별화된 입지를 다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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