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4년 멈춰 선 세운지구···돌고 돌아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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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세운지구 '재정비촉진지구' 구역 일괄 해제 후 '보존' 나서
사업시행인가 및 진행 구역 '개발 유지'···판자촌·고층빌딩 공존하나
서울 중구 세운3구역 일대 허름한 공구상가들 옆으로 세운 3-1·4·5구역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박성준 기자)
서울 중구 세운3구역 일대 허름한 공구상가들 옆으로 세운 3-1·4·5구역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박성준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현재 방치돼 있는 세운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쓰레기촌이 따로 없어요.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공구상가 일대 모두를 실업자로 만들 뿐이에요." (서울 중구 세운3구역 주민)

14년 가까이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세운지구가 다시 한 번 큰 혼란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연초 노포 보존 문제로 개발사업이 전면 중단된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개발계획을 뒤집고 '보존'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들은 사업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향후 기존 공구상들까지 모두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찾은 서울 중구 세운상가는 한창 바쁠 오후 시간에도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문을 닫은 상가들이 곳곳에 위치한 가운데 삼삼오오 골목에 모여 잡담을 나누거나, 가게 안에서 멍하니 TV만 보며 점포를 놀리는 가게도 심심찮게 보였다. 연초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는 3구역 일대를 찾았던 것과 비교해 바뀐 것이 있다면 가게를 놀리는 점포만 더욱 늘었을 뿐이다.

최근 서울시가 세운지구 일대 '재정비촉진지구'를 일괄 해제하고, 골목을 '보존'하는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주민들은 격해진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6구역에서 전기배전판사업을 운영하는 이 모씨는 "옛날에는 우스갯소리로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탱크도 만든다고 했지만, 개발사업이 오락가락 진행돼 자재상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면서 "어디는 사업을 하고, 안 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이렇게 무너져 내린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3구역에서 스프링을 도소매하는 60대 지주 김 모씨도 "토지주들은 당장 다음해 사업이 진행된다고 하니 괜스레 임대료를 올려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 않았고, 영세사업자들도 곧장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 10년 넘게 이어졌다"면서 "서울시는 일대 실상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이제와서 도시재생한다고 하는 건 여기 사람들 모두 죽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운지구가 처음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해는 지난 2006년이다.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판자촌 상가들을 허물고 10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세우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업은 무산됐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지난 2014년 '2020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개발 사업은 다시 진행됐다. 이외에도 중구청은 세운상가 일대를 '공구특화거리'로 지정해 문화관광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노포(老鋪) 보존 문제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 내 대표적인 노포로 꼽히는 을지면옥 등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일부 상인들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를 꾸려 단체행동에 나서는 등 재개발 중단 요구가 이어졌다. 이에 박 시장은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지난 14년동안 이어온 개발 사업을 뒤엎어 버린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구지정으로 정해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는 아직 발표된 것 없지만, 큰 틀에서는 도시재생으로 기존 상가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곳이나, 인가가 진행 중인 곳들은 그대로 개발하고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역은 해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운상가 내 위치한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모습. (사진= 박성준 기자)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운상가 내 위치한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모습. (사진= 박성준 기자)

문제는 같은 구역 내에서도 도시재생과 개발 사업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중구청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세운3·5·6구역은 세부 16개 구역 가운데 11곳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세운 6-3-1·2구역의 '을지로 트윈타워'의 경우 이미 올해 4월 준공을 마치고 대우건설과 BC카드 등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상황이다. 즉, 주택 및 고층 업무빌딩과 판자촌 상가들이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게 되는 셈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같은 행정처리로 인해 남은 공구상인들까지 모두 쫓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운3구역 한 주민은 "공구상가들을 그대로 두면서 그 옆으로는 고층 빌딩들을 세운다면 중심지구 내 높은 임대료를 내고 들어간 사람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겠나"면서 "이미 늘어진 개발로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마당에 사실상 언제 쫓겨나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문화적 보존이 필요한 지역이라는 것에도 의문 부호가 붙는다. 가로등, 도로정비 등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한 것은 물론 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노후된 컨테이너들이 밀집한 곳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개발 사업이 아닌 '보존' 중심의 도시재생을 진행할 경우 시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가 없다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 상가를 운영 중인 대부분의 공구상들은 영세업자들로 도시재생을 이끌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진행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소규모 지역 중심의, 기존 시설들을 보존하며 문화화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세운상가 일대가 문화적 건물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서울을 대표할만한 거리로 재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세운지구는 중심업무지구, 도심지에 위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건폐율을 줄이고, 용적률을 높이는 등 랜드마크를 만들고 도심 기능을 되찾을 수 있는 공원화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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