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은행장 자리를 탐한다면?
[데스크 칼럼] 기업은행장 자리를 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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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명언(?)은 실제 금융당국의 수장이 과거 한 발언이다. 소위 관치(官治)다.

관치 하면 법가 사상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사상에 집중하며 모든 이론을 군주의 관점에서 펼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법가가 진정으로 중시한 것은 ‘법(法)’보다 ‘권(勸)’이다. 법이 없으면 관이 치하고자 하는 명분이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러 가지 법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의도가 시끄럽고 심지어 개인사까지 법은 치하고 있다. 친구와 저녁이라도 먹으려면 먼저 친구의 신분을 따져야 한다. 김영란법을 의식한다. 누구에게 고언(苦言)을 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곱씹어야 한다. 모욕·명예훼손 등과 관련한 법들에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권에서 관의 치를 가장 눈치보는 대표적인 곳이 금융이다. 주인 없는 은행 등 금융권의 특성 때문이다. 은행 뿐 아니라 주인이 있는 금융사도 당국의 눈치를 본다.

기업은행장이 오는 27일 임기 만료다. 은행장으로 따지면 관치를 버린지 10년 가까이 됐다. 하지만 최근 관치로 돌아갈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2010년 조준희 행장이 처음 내부 출신으로 기업은행 수장이 된 이래 권선주 행장과 임기 만료인 김도진 행장에 이어지기까지 세 명의 내부 출신 인사들이 기업은행을 무리 없이 잘 이끌었다.

조준희 행장은 비정규직을 텔러로 전환하고 금융권 고졸 채용의 스타트를 끊었다. 전에 없던 인사 혁명을 통해 기업은행의 변화를 일으켰다. 학연과 지연, 스펙과 간판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실력만 있으면 고졸이든 계약직이든 행장이 될 수 있는 그런 은행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조 행장은 도전했다. 신선한 변화였다.

뒤이어 권선주 행장은 여성은행장이란 역사를 쓰더니 경영도 무리없이 잘 이끌었고, 바통을 이어받은 김도진 행장 역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는 등 기업은행 내부 출신 행장의 명성을 바래지 않게 했다.

그런데 새로 올 기업은행장에 기획재정부 등 관 출신이 임명될 것이란 얘기가 돈다. 벌써부터 정은보 한미 방위비 협상 수석대표,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반장식 윤종원 전 청와대 수석 등 몇몇이 하마평에 오른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청와대에서 임명하는 구조로 돼 있다. 기업은행은 민간은행도 아니다. 법대로 하자면 관치는 하자가 없다.

이에 기업은행 내부(노조)와 시민단체는 전문성 등을 들어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고 있다. 행장의 낙하산 임명은 그간 쌓아온 조직문화를 뒤돌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내부 임직원의 최종 꿈인 은행장 자리는 넘봐선 안된다는 자조(自嘲)감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관 출신이라고 은행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란 법은 없다. 하지만 10여년의 내부 출신 은행장 관행을 뒤로 돌리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명분과 실리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그 자리의 책임감은 더욱 무겁다.

중소기업의 자금 젖줄을 자부하는 기업은행의 수장 자리에 전보다 못한 실적과 문화를 만든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던질 각오쯤은 돼 있어야 한다. 괜히 은행장 자리에 낙하산 식으로 내려와 임기나 채우면서 안이함에 빠질 것 같으면 아예 탐하지 않는 게 낫다. 은행은 지금 대변혁기에 있다. 내려올 터이면 기업은행을 더 나아지게 할 포부와 책임감은 갖고 와야 한다.

김무종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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