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故 김우중 회장, 미완의 '대우신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故 김우중 회장, 미완의 '대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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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재계 2위 대우그룹 창립···향년 83세
'세계경영' 이끌다 '대마불사' 깬 불명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다 최근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그룹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 전 회장의 철학처럼 빠르게 뻗어나갔으나 30여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대우그룹의 역사는 종합상사 전성시대와 궤를 같이 한다. 1967년 3월 22일 열평 남짓 사무실에서 출발한 대우실업이 문을 열며 시작됐다. 트리코트 원단 수출의 귀재라고 해서 `트리코트 김'이라 불리던 청년 김우중은 서울 충무로에 사무실을 빌려 셔츠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시아에 내다 팔았다.

김 전 회장의 수완과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을 양날개로 달고 대우실업은 급성장했다. 경제 고도성장에 김 전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다계열, 다업종' 확장에 나섰다. 대우는 1973년 한 해에만 대우기계, 신성통상, 동양증권, 대우건설 등 10여개의 계열사를 인수했다.

1976년에는 한국기계를 흡수해 대우조선으로 개편한 옥포조선소과 묶어 대우중공업을 만들었다. 1978년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를 인수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4년 세운 대우전자는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더해서 주력기업으로 키웠다.

대우그룹의 상징이던 서울역 대우센터 빌딩은 앞서 1977년 완공했다. 지상 23층 규모의 사옥은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창사 15년 만에 체급을 부쩍 키운 대우그룹은 1982년 대우실업을 ㈜대우로 바꾸고 그룹 회장제를 도입해 제대로 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1990년대 들어서도 대우그룹은 성장 위주 전략을 유지했다. 1993년에 '세계경영 우리기술'을 슬로건으로 폴란드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는 등 동구권 시장 개척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1995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대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산업총회사를 북한 남포에 설립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쌍용차도 인수했다.  1998년에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리며 자산 기준으로 삼성과 LG를 제치고 재서열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국내 10만5천명, 해외사업장 21만9천명으로 임직원이 30만명이 넘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몸집을 불리던 대우그룹은 무리하게 빚을 내 과잉투자를 하는 차입경영의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외형확대에 치중하느라 다른 그룹에 비해 구조조정도 늦었던 탓에 국가신용등급 추락 여파로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압력이 거세지고 해외 자산가치가 추락하자 대우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1998년 12월 계열사를 10개로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이 발표됐지만 삼성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계획이 실패하며 이듬해 8월엔 12개 주요 계열사 워크아웃이라는 극약 처방을 받았다. 당시만해도 정설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던 '큰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법칙이 마침내 깨졌다. 은행빚으로 확장한 문어발식 경영의 폐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후 2000년에 수십조원 규모 분식회계가 적발되며 대우그룹은 회생 불능 사태가 됐다. 대우그룹 분식회계는 1997년 19조여원, 1998년 21조여원 수준이다.

대우그룹은 한국 경제성장기에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분식회계와 부실경영으로 국가 전체를 휘청이게 하고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

자산규모 2위 재벌그룹은 결국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 됐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대우'라는 이름만 흔적처럼 남게됐다.

김 전 회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2017년 3월 열린 대우 창업 50주년 기념행사가 마지막이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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