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약가점 낮으면 꿈도 못 꾸는 새 아파트
[기자수첩] 청약가점 낮으면 꿈도 못 꾸는 새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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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청약가점이 70점 초반대는 돼야 안정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60점대는 아무래도 좀···." (서울 서초구 잠원동 A아파트 분양 관계자)

최근 서울 강남권 신규분양 단지의 견본주택에서 들은 말이다. 청약가점이 어느 정도 돼야 안정권이냐는 질문에 분양 관계자의 답은 망설임 없이 '70점 이상'이었다. 4인 가족이 채울 수 있는 최고 가점인 69점도 불안한 수준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분양 관계자의 말처럼 청약을 마친 해당 단지의 당첨 합격선은 최고 79점에 달했다. 사실상 만점(84점)에 가까운 점수다. 최소 가족 구성원이 5인 이상에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도 최대로 길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른자위 땅'이라고 불리는 강남권이기 때문에 이토록 커트라인이 높은 걸까. 서울 지역 전체로 확대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금융결제원을 살펴보면 이달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당첨자의 평균 청약가점은 50점 후반에서 70점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강남 재건축 단지에 고민 없이 청약을 넣었던 50점 초반대 가점 보유자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 발표 이후 '가점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상한제 적용 후 강화될 전매제한을 피하려 너도나도 청약 통장을 꺼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는 70점대 고점자들이 수두룩하다. 시장 한쪽에서 "예전에 무리해서라도 빨리 집을 샀어야 한다", "당첨을 위해서라면 위장전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볼멘소리가 갈수록 늘어나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민간 분양가상한제 유예가 끝나는 내년 4월 이후엔 청약 당첨 가점이 더 높아질 전망이라는 점이다. 청약 통장을 아껴온 고점 무주택자들이 본격적으로 청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당첨 가점이 높아질수록 무주택 기간이 짧고 부양가족이 없는 30대, 더 나아가 40대는 청약통장을 10년 넘게 가지고 있어도 서울 주요 지역 당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한제 시행으로 기대되는 효과도 있다. 정부는 내년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낮아지는 분양가가 그 근거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실수요자들이 더 저렴한 분양가에 새 아파트를 꿈꿀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분양가가 아무리 낮아진다고 한들 청약가점이 낮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정부가 정말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다면 정책 시행으로 예상되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내 집 마련 기회에서 더 멀어지는 이들을 위한 고민을 깊이 있게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값만 저렴해진 아파트는 되레 상대적 박탈감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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