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사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달라?
[기자수첩] 조사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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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어떤 사안에 대한 내용을 방어할 때 가장 그럴듯한 답변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모르겠다 혹은 잘 알지 못한다. 두번째는 긍정 및 부정. 세번째는 조사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달라.

지난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종합국감을 마지막으로 올해 에너지 관련 기관들의 국감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날 한빛 3·4호기 격납건물 공극(구멍)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진 가운데 역시나 예상했던 '그 답변'이 반복됐다. "조사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달라. 협의체를 통해 해결하겠다"

첫번째 답변은 대놓고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성의가 없어 보인다. 두번째는 위증죄로 고발당하거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등 곤혹스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의 경우 면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조사 중인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답변하는데 어쩔 것인가.

최근 들어 이같은 방식은 더 대담해지는 추세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몇 번이나 조사와 발표를 반복하거나 특정 시기의 조사 결과는 숨기고 용두사미식 결과 발표로 덮어버리기, 국감 앞두고 조사 착수하기 등 형태도 다양하다. '조사하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이같은 행태들로 진실 규명이 목적인 활동들도 피해를 입게 생겼다. 

약 2년 동안 진행됐던 한빛원전 민관합동조사 결과가 이달 초 발표된 바 있다. 무슨 조사 결과를 더 기다린다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현대건설이 보수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알려진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 현대건설 등은 '한빛 3·4호기 격납건물 공극 현안 관련 협의체'를 구성했다.

민관조사단은 규제기관을 믿지 못하는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해 만들어졌다. 조사단 운영비를 사업자가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한계는 분명했지만 어쨋든 부실시공 영향이 컸다는 결론과 제 3자의 구조물 건전성 평가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 우선 책임질 부분은 확실하게 책임져야 한다. 현대건설 측은 국감에서 "감리는 한국전력이, 당사는 시공만 실시했다"고 언급했다가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 논리대로라면 각자가 맡은 영역을 일단 확실하게 책임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이번 사태의 주범들이 다시 모여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매번 이런 식이다.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면 감사원 혹은 확실하게 독립된 제 3자의 조사를 받아보면 될 일이다. 부실시공에 이어 '부실책임'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국감에도 한빛 원전은 등판하게 생겼다. 같은 사안이 몇 년 동안 반복되면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까.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성폐기물 무단 반출과 중·저준위 핵종분석 오류 사건도 마찬가지다. 규제기관이 문제를 발견한 후 조사에 착수하는 식이 아닌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조사 미흡으로 또 다른 문제가 터져야만 재차 조사를 반복하는 식이다.

올해 8월 핵종분석 오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원안위는 국감을 앞둔 지난달 16일부터 방폐물 관리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원자력환경공단의 후속 대책 이행을 점검하는 차원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국감을 의식한 면피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폐기물 무단 반출 사건도 자체 조사가 아닌 2016년 한 제보를 통해 알려졌다. 원안위는 2017년 4월까지 특별검사를 실시했고 총 34건의 위반사항을 밝혀냈지만 조사 후에도 폐기물 문제는 불거졌다. 지난해 1월 원안위는 연구로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외부에 처분됐다는 제보를 받고 2월부터 6월 말까지 다시 조사를 진행했다. 잠잠해질 것으로 여겼지만 같은해 10월 사라진 폐기물 가운데 중·저준위 10t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한 의원실에 보고되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최근 민간 주도의 연구원 감사 과정에서 폐기물 무단 반출 조사 당시 핵종분석 문제도 이미 인지했다는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매번 일이 터져야만 나서는 '뒷북' 대응은 직무 유기인지 무능인지도 헷갈린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조사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인가.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23건의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원인과 대책을 발표했지만 특정기업 봐주기식 혹은 부실조사 논란이 인 바 있다. 조사 결과를 기다려봤더니 정작 중요한 문제는 쏙 빠진 셈이다. 

조사위 발표 이후 현재까지 4건의 화재가 추가 발생하자 조사단이 다시 만들어졌다. 지난 조사위와는 구성기관과 형태가 다를 뿐만 아니라 이번 조사는 민간 중심으로 실시하게 된다. 산업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려면 23건의 화재를 포함시켜 처음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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