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부터 최근까지의 세계 금융산업 변화는 한마디로 대형화와 겸업화이다. 국경과 업무영역을 뛰어넘는 초대형 금융기관간의 통합 추세가 국내의 금융환경과 은행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IMF 위기전 33개에 달하던 은행수가 최근 국민·주택은행 통합에 이어 서울·하나은행간의 합병 등이 이루어지면서 1/3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금융의 세계화 추세에 맞추어 생존과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시작된 대형화가 이제는 중소은행들의 짝짓기를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간 인수·합병, 즉 은행대형화는 고객기반의 확대를 기하고 다양한 금융서비스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비용구조를 효율화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은행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시장지배력을 높여 독점이윤을 취하게 하거나, 기업·개인에 대한 대출을 감소시키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은행대형화가 거래기업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금융시장의 중개효율성과 금융자원의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특히,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을 통한 자금차입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은행대형화가 중소기업의 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중요한 문제로서 인식된다.

국내에서는 은행합병이 거래기업의 대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미시적인 실증연구가 (Purchase & Assumption)와 M&A(Merger & Acquisition) 등 합병방식과 대형＋대형은행, 중형＋소형은행 등 합병유형이 기업대출에 미치는 영향을 은행별 인수·합병자료를 이용, 패널분석(Panel Data Analysis)을 통하여 계량적으로 실증연구함으로써 은행 대형화와 거래기업 대출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어음부도율과 같은 시장경제변수를 통제하지 않은 모형에서는 외국의 경우처럼 국내에서도 은행간 인수·합병에 따른 대형화로 중소기업 대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은행간의 합병이 중형＋소형은행 등의 합병유형에 비해, 그리고 정부의 퇴출명령에 의해 부실은행을 우량은행이 인수하는 P&A방식의 합병이 비교적 우량은행간의 합병이라 할 수 있는 M&A방식의 합병보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장경제변수를 통제한 모형에서는 예상과 달리 은행합병이 중소기업 대출비중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M&A방식의 경우 P&A방식에 비해 중소기업 대출비중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기업 대출의 경우에는 중소기업 대출과는 대부분 반대로 나타나 은행합병은 대기업 대출비중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분석결과가 차이가 나는 것은 전반적인 경제상황이나 금융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어음부도율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의 외적인 환경요소를 고려할 경우 합병이 반드시 중소기업대출을 줄이거나 대기업대출을 늘인다고 해석하기에 곤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은행간 합병이 경제환경의 악화 등을 예상하고 구조조정의 성격을 갖고 실행될 경우 중소기업 대출의 감소는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에 기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제할 경우 합병효과는 오히려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지 않는 방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95년∼2000년중 합병관련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비중이 표면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합병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어음부도율 증가 및 신용경색 현상의 확대 등 경제상황의 악화로 은행들이 대출보다는 국공채 등 안전자산을 선호(flight to quality)한 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주도의 은행산업 구조조정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대형화와 은행자산의 건전성 제고를 통해 상대적으로 신용이 약한 중소기업 대출시장이 붕괴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은행합병이 기업대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에 있어 합병방식을 고려한 분석결과는 그렇지 않은 기존 연구에 비해 보다 차별화된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향후 합병관련은행 거래기업의 주가변동분석 등의 미시적 연구가 추가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은행합병과 관련한 정책수립 및 집행이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