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팔아 자금 대고 직접 독립운동 뛰어들고"···광복 일군 기업들
"소화제 팔아 자금 대고 직접 독립운동 뛰어들고"···광복 일군 기업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라 되찾고 겨레 살리는 데 힘 보태는 것이 나라 돕는 일"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왼쪽)와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 (사진=각 사)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왼쪽)와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 (사진=각 사)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에도 민족 독립을 이끈 기업들이 있다. 특히 독립운동 100주년과 광복 74주년을 맞은 올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등 경제보복행위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창업주 정신을 이어오는 기업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구인회 포목상점'이란 포목상으로 시작해 LG그룹의 기반을 닦은 고(故) 구인회 창업주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열혈 애국자였다.

일제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요청하자 구 창업주는 "당할 땐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며 독립운동 자금으로 당시 1만원을 쾌척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1억원이 넘는 돈이다.

구 창업주 부친인 춘강(春崗) 구재서 공 역시 1930년 의령 출신 일정(一丁) 구여순 선생을 통해 상해임시정부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으로 당시 5000원을 지원했다.

LG는 이런 구 창업주의 '애국 충정' 정신을 이어 만해 한용운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등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개보수하고 있다. 또 국가유공자 자택 개보수 및 지원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도 애국지사 후손이다. 하 부회장의 증조부인 일암(逸庵) 하장환 선생은 독립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과 함께 항일 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애국지사다.

LG그룹의 사돈이자 GS그룹의 뿌리인 고 허만정 창업주도 백산상회를 도우며 민족 독립을 일궈냈다. 백산상회는 겉으로는 쌀과 옷감, 생선 등을 판매하는 점포였다. 그러나 실상은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대던 자금 조달본부였다.

'기업은 나라와 민족의 것이고 국민의 소유'라는 경영원칙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유일한 박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보여준 유일한 인물이다.

유 박사는 1930년대 후반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럽과 중국 시장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 말기인 1942년 '재미한인'으로 이뤄진 '한인국방경비대' 창설을 주도했고, 일제 말기인 1945년 미군 전략정보처 'OSS(현재 CIA의 전신)'의 '냅코작전'(재미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에 참가하기도 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뜻을 기리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인 김호연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빙그레가 그 주인공이다.

재단법인 김구재단은 1993년 12월 29일 김 회장이 사재 112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국내·외 학술연구 단체에 대한 지원사업과 초중고, 대학생에 장학금 지급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소화제를 팔아 독립자금을 댄 고 민강 사장은 1897년 서울 순화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인 동화약방을 세웠다. 당시 급체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팔았다. 활명수는 사람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이다.

활명수는 민족 독립을 이뤄낸 물이기도 했다. 민 사장은 활명수를 팔아 독립자금을 댔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동화약방은 임시정부의 비밀 연락책으로 쓰이던 '연통부' 사무실이기도 했다.

동화약품의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은 민족경제 자립을 위해 비밀조직인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했다. 윤창식 선생의 아들인 윤광렬 회장도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중대장으로 맹활약했다.

일제의 금융침탈에 맞서 세워진 금융기업도 있다. 고종은 일본이 조선 자본을 찬탈하기 위해 은행 설립을 난립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황실 자금으로 '대한천일은행'을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 후손이 세운 기업으로는 교보생명이 대표적이다. 창업주 신용호 회장의 부친인 신예범 선생과 형인 용국·용율씨가 모두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신창재 현 회장은 신용호 회장의 큰아들이다.

신용호 창업주는 '천일독서(千日讀書)'를 통해 책 100권을 정독하고, 시장과 부두 그리고 관공서를 둘러보는 현장학습으로 세상을 깨우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업을 하며 많은 독립운동가에 도움을 줬지만,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 독립자금을 보탰다. 국민 교육과 민족 자본을 위해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들며 교보생명을 국내 제1의 보험사로 키웠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