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위기에 빛나는 국민성
[홍승희 칼럼] 위기에 빛나는 국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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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장사하는 아들과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 둘을 둔 어미의 마음을 때아니게 모든 국민이 느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일본의 한국경제를 향한 수출규제가 시작되면서 일본산 원료를 수입해 사용하던 기업들이 비상이 걸린 한편으로는 국내의 원료 생산업체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원료 수입 기업들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대일 의존도를 낮출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국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이 대대적으로 마련될 것으로 보여 산업계 전체로 보면 결국 응달과 양달이 공존하는 균형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실상 올해 들어 미국과 중국이 무역 분쟁을 벌이는 통에 고래싸움에 말려든 새우 꼴이 되어 수출의존도 높은 한국은 그것만으로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아예 한국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인 반도체기업들을 향해 핵심 소재들의 수출을 규제함으로써 사실상의 한국 경제 봉쇄전의 선전포고를 했다.

그런 상황에 한국은행은 드디어 올해의 성장률 목표를 대폭 낮췄다. 정부가 연초 제시했던 성장률 목표를 하향조정하더라도 통상 0.1~0.2%p 수준이었던 데 비해 올해는 무려 0.3%p나 낮췄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마저도 더 낮춰야 할지 모른다는 의견들이 많다.

당초 예상보다 매우 부진한 수출과 전반적인 경기부진으로 금융통화위원회는 시장의 예상보다 앞당겨 금리를 인하했다. 8개월 전 미국과의 금리역전에 대비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던 한국은 미국의 금리인하 움직임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면서 동시에 침체된 경기를 부양할 대책으로 서둘러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이제까지 일본은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경제공세를 벌였고 그때마다 늘 버티지 못하고 일본 요구를 수용해야만 했던 한국 정부도 이번엔 일본의 공격에 너무 쉽게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장기화에 대비할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이번 일본의 공세는 여느 때와 달리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됨에 따라 늘 한국 정부의 항복을 요구하던 재계도 이번에는 대통령의 대응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해 가고 있다.

물론 그런 정부의 노력에 보수야당이 얼마나 협조하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이번 사태는 적어도 한국의 산업체질에 수술을 할 적기로 여기고 닥쳐오는 어려움을 더 이상 회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일본의 공세에 맞선 한국 정부는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미국을 향해서도 일본의 공세가 결코 3국 공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설득해나가지만 동시에 미·일의 압력을 수용해 체결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경우에 따라 검토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줌으로써 원론적이지만 우리 쪽 또한 압력카드를 갖고 있다는 공세적 대응태세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정부 대 정부의 싸움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국민 대중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 또한 산업지형에 어떤 형태로든 작은 영향이라도 미치고 있다. 이런 운동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일부 수요라도 일본 상품을 대체할 국내 상품들의 매출로 이어진다면 한편에서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불매운동에 대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우려하는 소리들도 있지만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한 네티즌의 “개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정부는 갈 길 제대로 가라”는 한마디에 이번 사태를 대하는 국민 정서가 함축돼 있는 듯하다. 힘든 싸움이 될 거라며 미리 앓는 소리를 내는 보수언론이나 보수 정치인들도 있지만 오히려 국민 대중은 마치 전시에 자원입대하는 청소년들처럼 이번 한일 경제전에 씩씩하게 전선으로 달려가는 모양새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선 일본 언론보다 더 친일적인 발언과 기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국가적 위기상황을 정쟁의 기회로 삼으려는 그런 세력들에 비해 대다수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늘 그랬듯이 하나로 뭉쳐지는 경향을 보인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와 재벌을 욕하면서도 아기 돌반지까지 내놓고 몇 푼 안 되는 달러도 박박 긁어모으던 때처럼, 혹은 왕실로부터 햇빛 한줌 받은 적 없는 백성들마저 의병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던 그 때처럼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또다시 하나가 되어 ‘개싸움 내가 할 테니 정부는 당당하게 나아가라’고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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