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과 통일, 그 닮은 꼴
합병과 통일, 그 닮은 꼴
  • 홍승희
  • 승인 2003.08.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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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 합의서 뒤에 붙는 부록에는 “다음의 용어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며 남측과 북측이 같은 의미를 지닌, 그러나 다르게 표기하는 용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차이는 실상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문서의 진위를 확정짓는 데 있어서나 자칫 어감상의 차이로 발생할 수도 있는 상호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남측에서는 송하인, 수하인이라는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비해 북측은 판매자, 구매자라는 일반적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중량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남측과 달리 무게라는 순 우리말을 사용하는 북측이 이런 하찮아 보이는 차이에 신경을 쓰는 까닭이 단순한 기싸움만은 아닐 것이다. 한자를 쓰지 않은 채 사용되는 수표라는 말이 북측에선 서명의 의미를 지닌다.

50년이라는 시차, 게다가 서로 다른 정치 경제체제가 만들어 낸 크고 작은 차이를 함께 뛰어넘지 않으면 극히 사소한 용어 하나에 매우 큰 갈등의 위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남북의 관계는 앞으로 통일 과정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실상 분열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에서 정치적 통합은 가장 단순한 과정일 수도 있다. 국제정치역학의 영향을 크게 받다보니 가장 중심적 장애인 듯 보이지만 독일의 통일 전후를 살펴보면 오히려 경제, 문화적 통합의 토대 위에 정치적 통합이 얹혀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 요즘 통일비용을 논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 통일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경제적 통합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독일 통일의 과정과 통일 이후 사정은 요즘 국내 금융계에 불어닥친 합병 바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국내 금융기관들의 임금 수준은 그 편차가 그리 크지 않고 또 기업문화적으로도 별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합병이 확정된 신한은행 노조와 조흥은행 노조간 갈등을 보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이 통일 이후 가장 심각하게 앓고 있는 골치거리는 구 동독과 서독 주민간의 위화감과 그로 인한 불만들이라고 한다. 그들도 우리 남과 북처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분단 전까지 같은 문화를 향유해온 동족이다. 그러나 동·서독간 예상보다 큰 경제력 격차는 갑작스런 통합 이후 양측에 동시에 피해의식을 안겨주게 했다.

국영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동독인들은 통일과 동시에 민영기업들의 불안정한 고용조건에 내몰리게 됐다. 그런 배경에는 기업들의 고용조건 악화를 우려한 서독 노동자들이 동독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수준을 요구함으로써 동독에 대한 기업의 투자 매리트를 분쇄시켜 버린 노동운동의 어긋난 판단도 자리잡고 있다.

서독 기업들의 대 동독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동독 노동자들의 대거 실업이 초래된 것이다. 그 결과는 통일비용 증가의 짐을 서독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차일피일 그에 합당한 짐 지기를 미루다 보니 독일 경제 전체를 수렁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통합과정의 문제는 기업간 합병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합병 과정에서 그런 예상되는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 후유증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대등한 합병이라도 갈등은 얼마간 지속되지만 흡수합병인 경우 그 갈등의 기간도 길고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다. 결국은 합병·피합병 기업간 격차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인정하느냐 여부가 중요해진다.

이것은 옳으냐, 그르냐는 잣대로 잴 수 없는 ‘현실’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경영참여권이 없었던 노동자들은 억울한 심정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합병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노조도 기업의 경영결과에 책임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공식 통합까지 일정 유예기간을 얻은 신한`조흥 양 은행의 합병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함께 수렁으로 빠질 것인지, 진정으로 윈윈할 것인지, 그 선택의 카드는 합병은행인 신한 경영진 앞에도, 그리고 양 노조 앞에도 예외없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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